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Dec 10. 2020

이모와 고모의 차이

왜 이모는 가깝게 고모는 멀게 느껴질까

"못 본 사이에 더 많이 컸네!"


오랜만에 고모가 온 날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누구든 일가친척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는 날에는 신이 났다. 만나면 다들 좋은 말을 한마디씩 해주고 가끔은 용돈도 주고, 엄마와 달리 나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안 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어른들이었고, 덤으로 함께 온 사촌동생들은 늘 함께하던 동생들과는 또 달라서 더 귀엽고 재밌게 느껴졌다.


거실에서는 엄마를 뺀 온 가족이 모여서 화기애애하고, 엄마는 혼자 부엌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주전부리를 준비하고 사용한 그릇을 씻었다. 어릴 땐 그저 맛있는 걸 먹고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동생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군림하며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나 명절을 보내는 게 신이 났다. 어린 나는 단순해서 이 음식들이 어디에서 오고 사용한 그릇들은 어떻게 다시 뿅 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다시 등장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이모와 고모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싶으면'고모님~'이 아니고 '이모님~'하고 부르고, 어릴 적부터 봐온 여성 어른들을 모두 'ㅇㅇ고모'아니고 'ㅇㅇ이모'라고 부르는 걸까. 그저 자주 그 단어를 사용되고 아니 고의 문제일지는 몰라도 심지어 '고모'라는 단어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고 '이모'라는 단어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의 감정은 단어에 국한되지 않아서, 실제 고모들을 떠올리면 거리감이 느껴지고 이모들을 떠올릴 때면 반가움이 몰려왔다.


처음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엄마가 가끔 해주던 이모들과의 어릴 적 일화들이 이모들을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들었고, 반면 어린 시절이나 형제들에 대해 별 언급이 없었던 아빠로 인해 고모들은 덜 가깝게 느끼는 것일 거라고. 그래서 자주 보지 못하는 이모들도 마치 함께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고, 고모들은 다소 미지의 세계에 있는 어려운 어른들처럼 느껴지는 거라고.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알았다. 대부분 나처럼 이모는 가까운 일가친척, 고모는 멀고 데면데면한 누군가처럼 느끼고 있다고. 그때는 그냥 신기하다며 웃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모는 언제 봐도 반가운 한 가족처럼, 고모는 저만치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낀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같은 촌수의 친척인데 왜 이모는 가깝게 느껴지고 고모는 멀게 느껴질까.


나이가 한 살씩 차오르고 가족 모임이 얼마나 기형적이었는지는 인지하기 깨달으며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떠들며 음식을 먹고 시간을 가지는 아빠와 아빠의 형제들, 그리고 자기 집에서 앉아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그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우리 엄마. 이모는 엄마와 친하고 아빠에게 조심스럽고 친절한데, 고모는 아빠와는 가깝지만 엄마를 마치 자신이 부리는 사람인 듯 행동해서 일 것이라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고모가 멀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잘해주는 듯 하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안하무인 시누이인 고모를 좋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지 상정이다고.


전국의 고모들은 다 성격이 까칠하고 트집잡기를 좋아하고 이모들은 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인 걸까. 하지만 이모도 누군가에게는 고모이고, 고모도 누군가에게는 이모일 텐데. 문득 궁금해졌다. 다정한 우리 이모들도 다른 이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고모일까, 우리 고모들도 다른 사촌들에게는 다정한 이모 일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성격 좋은 우리 엄마도 또 다른 사촌에게 그런 고모일까.


사람은 본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행동한다. 아마 우리 고모들은 본인 엄마의 며느리이자 오빠의 아내인 엄마를 그렇게 대할 수 있도록 사회가 허락했다고 생각했을 거고, 우리 엄마도 그렇게 암묵적으로 이어진 사회적 규범을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해서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는 게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혹시 생각을 해 보았을까.


사람은 참 간사해서, 본인 몸이 편하면 악습도 전통이라며 지속하길 바라고 본인 입맛에 맞지 않는 좋은 전통은 구식이라며 유리하게 바꾸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 날 그 가족모임에서 모두들 혼자 고생하고 있던 우리 엄마의 노고에 대해 침묵했을 것이다. 항상 그렇게 해 왔던 것이니 너는 그렇게 해야 하고, 우리는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져 마땅하다고. 그러나 고모들이 또 다른 집에 가면 이모가 되듯, 시누이 노릇을 하는 본인들이 다른 집에 가면 며느리가 된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당장의 편안함만 생각하고 남에게 함부로 하면 그게 바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거란 사실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난날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고모였을 이들이 또 다른 이 에게는 자신들이 이모임을 깨닫고 배려하고 함께하는 더 나는 사회를 만들어가길.

매거진의 이전글 설거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