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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9. 2020

흔히 말하는, 요즘 젊은 교사

그러니까, 나를 살피고 내 일을 야무지게 해내는 그런 교사

"어휴, 요즘 젊은 교사들은... 쯧쯧."


처음 발령이 났을때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흔히 '요즘 젊은- '으로 시작하는 말이 그렇듯, '요즘 젊은 교사들은' 선배 교사들을 존경할 줄 모르고 힘든 일은 절대 맡지 않으려고 하며, 조금만 부당한 일이 생기면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사람들로 통칭되었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공동체 의식이 부족해서 학교 입장은 살피지 않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그래서 싸가지가 없다는 조금 수위높은 비난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옆에 앉은 나를 향해 말하는 거다. 'ㅇㅇ선생은 그렇게 하지마'. 그러면 갓 발령받아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나는 그저 그런줄 알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마음에 새겼다. 선배 교사를 존경하기, 힘든 일은 내가 하기, 부당한 일은 참기, 공동체 의식 가지기, 학교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나를 뒤로 미루기, 싸가지 있게 살기.




나는 그들이 말하는 '요즘 젊은 교사'가 되기 싫었다. 실은 그땐 그 '요즘 젊은 교사'가 무얼 의미하는지 제대로 몰랐다. 그냥 그 단어가 뱉어질 때 가지는 어감도, 말투도 싫었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기성세대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불리는 '요즘 젊은 교사'라서 그냥 하기 싫었다. 원래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냥 그들이 말하는 바른 행동이라고 일러주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갔다. 


그래서 내 성격에 맞지 않게 싹싹하려고 애쓰고, 과도하게 지워진 일도 혼자 다 해냈으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기는거니 그냥 내가 희생하고 꾹 눌러참고,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먼저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다. 학교가 필요하면 쉬는 날도 나와서 일을 하고 내가 그 과정에서 시들시들 시들어가는 걸 모르는 체 했다.


'요즘 교사 답지 않다'라는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 그렇게 몇년을 살며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주문하듯 말하며 살다가 문득 멈춰서서 지난 날을 돌아봤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도 잘 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젊은 교사와 요즘 젊은 교사 답지 않음을 나열해놓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문득 요즘 젊은 교사가 왜 나쁜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나는 내가 똑똑하게 살아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요즘 젊은 교사'는 참 좋은 교사였다. 평등한 교직 사회를 실현하고, 공평한 업무 분장을 위해 노력하며, 부당한 일을 참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내는 교사. 충분한 자아 존중감을 가지고 나를 잘 챙기며, 자신부터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내 일도 잘 할수 있음을 알고 현실적으로 대처할 줄 아는 교사. 그러니까 비단 '요즘 젊은 교사'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들 모두 바른 길로 잘 가고 있는거다. 다만 몇몇 기성 세대 눈에 그게 참 거슬릴 뿐.


기성 세대에게는 그저 '요즘 젊은 교사 같지 않은 교사'가 편하고 다루기 쉬운 것이다. 사회적 요구나 교육 환경과는 관련 없이 본인들 입맛대로 움직여 줄 순진한 교사. 아무도 맡기 싫은 회피형 업무를 떠맡고, 주말에 나와야 하는 업무에 동원되며, 기피하는 학급의 담임을 하고 그러면서도 군소리 안하는. 그들은 그저 나도 젊어서 그렇게 살아왔으니 너희도 그래야 한다, 라고 하며 착하고 순진한 젊은 교사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길 은근히 강요를 하겠지만, 모든게 빠르게 변화하는 이 순간 '요즘 젊은 교사'들이 기성 세대가 살아 온 대로 답습한다는 건 교육 현장의 퇴보를 의미한다.


처음 교단에 들어서는 신규 교사들에게 교육 현장은 전혀 새로운 공간인지라, 누군가 바로 가도록 잡아주지 않으면 쉽게 길을 잃기 쉽다. 신규 교사들 뿐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들 중 몇몇은 분명 길을 잃고 헤메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요즘 젊은 교사가 되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요즘 젊은 교사'에는 단지 막 발령 받거나 연령이 어린 교사들만 포함되는게 아니다. 다만 이제껏 '요즘 젊은 교사'로 통칭되어온 것들을 할 줄 아는 교사를 뜻하는거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교사가 되기로 했다. 좋은 교육을 위한 논의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는 교직사회의 일원이 되기, 업무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맡고, 맡은 내 업무는 야무지게 잘 해내기, 부당한 일에는 내 목소리를 내기, 무엇보다 나를 살피기.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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