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버 엄마와 네 잎 클로버 이모
"이모가 너희 옷 사주셨어"
엄마는 이모가 사주셨다며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에게는 다소 벅찬 세미 정장을 내밀었다. 백화점에서 사 온, 우리가 좋아하는 드라마 '보고 또 보고'의 주인공인 금주와 은주가 입은 것과 같은 디자인의 옷이라 했다. 갓 초등학생이 된 내 눈에도 제법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빳빳한 아빠 양복 재질로 만들어진 원피스와 바지.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관리가 힘들어 되도록 사고 싶지 않지만 또 입혀놓으면 태가 괜찮아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그런 옷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이모가 엄청난 재력가였던 건 아니었다. 엄마보다 딱 2살 어린 이모는 그때 당시 5-6년 차쯤 되는 9급 공무원이었다. 그러니 월급이 많았을 리 없었지만, 우리가 보기엔 돈도 많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였다. 이모는 새 화장품을 샀다며 우리의 입술에도 색색깔의 립스틱을 척척 발라주고, 엄마는 몸에 좋지 않다며 먹이고 싶지 않아 하는 소시지도 마음껏 먹으라 하곤 했다.
실제 입히고 관리해야 하기에 실용적인 것이 중요할 엄마, 예쁘게 입혀진 모습만 볼 것이기 때문에 가성비가 떨어지더라도 보기 좋은 것을 선호하는 이모.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챙겨야 하기에 항상 꼼꼼하던 엄마, 가끔 보기 때문에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어 하던 이모.
나는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제일 사랑하지만, 엄마와 다른 이모의 모습은 어린 내게 또 다른 매력으로 내게 다가왔다. 엄마가 크로버 같이 항상 함께하는 행복이었다면, 이모는 네 잎 클로버처럼 가끔 만나 기분 좋은 행운 같은 존재였달까.
"언니, 조카 좀 낳아줘. "
"아니, 네가 좀 낳아주라, 돈 많은 이모 노릇은 내가 할게."
아직 결혼 생각이 없지만 또 아기는 좋아하는 우리 자매는 서로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상 부탁하곤 했다. 예쁜 조카를 낳아주면 돈 많은 이모 노릇은 내가 하겠노라고. 아이가 크면 '너희 엄마는 이런 거 안 사주지?'라며 아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슬쩍 사주는 돈 많은 이모. 가장 사랑하지만 그래서 아이를 혼내고 타이르는 악역도 맡아야 하는 엄마보다, 가끔 사춘기가 와서 엄마와 다툼이 있는 날이면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쿨한 이모가 되고 싶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조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엄마보다는 돈 많은 이모 노릇이 쉽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를 낳아 기를 그릇도 안되거니와 새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논하기도 전에 내 인생 책임지는 것도 벅찼다. 이모는 방긋방긋 웃는 조카를 잠깐 귀여워하다가 울기 시작하면 엄마 품에 쏙 안겨주면 그만이고, 엄마는 그 아이를 달래고 먹이고 기저귀까지 갈아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는 돈 많은(돈 많아 보이는) 사람 좋은 이모가 되기는 쉽다. 그냥 엄마보다도 돈 많은 사람 좋은 이모가 되기는 쉽다. 엄마가 하는 노력에 백분의 일만큼만 노력하고 백분의 일만큼만 돈을 써도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이모라고 느낄 거란 걸 나는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절 엄마의 기분을 상상해보곤 한다. 태어난 후로 온종일 키워온 아이가 한 달에 한 번쯤 만나는 이모가 좋다고 졸랑졸랑 따라다닐 때 엄마 기분은 어땠을까. 내게 서운했을까, 아이를 열심히 키워도 부질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래도 우리 아기에게 선물을 쥐어주는 동생이 고맙고 좋았을까.
우리 엄마는 틀림없이 고맙고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엄마보다는 돈 많은 이모가 되고 싶다. 조카가 좋아할 뿐만 아니라 내 동생인 아이 엄마까지 좋아할 테니까. 물론 나중에 내 조카가 어른이 되어서 자기 엄마만 생각하면 조금은 서운하겠지만 어쨌든 돈 많은 이모가 하고 싶다. 나는 손쉬운 좋은 사람 노릇을 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쉽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진짜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쉽게 쉽게 좋은 사람 노릇을 하며 살 것인가, 책임감을 가득 짊어지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영원할 사람이 될 것인가. 인생은 정말 선택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