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 어디까지 보호되고 어디까지 공개되어야 하나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던 연예인'
포털사이트에서 최근 뉴스를 좀 살펴볼까 하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내 손이 멈췄다. 관련 사진으로 한 연예인의 교복을 입은 앳된 모습이 떠 있고, 보다 자극적으로 달린 제목이 걸려있다.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새롭게 떠오르는 연예인이 있으면 꼭 그 연예인을 뒤따라 인터넷 사이트 어딘가에 그 연예인의 과거 사진이 업로드되곤 한다. 그러면 대중은 그 사진을 보고 성형을 했네 안 했네, 어딜 고친 거네 아니면 그냥 살을 뺀 거네 하는 식의 평가를 늘어놓는다. 그뿐인가, 외모를 평가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몇몇 티브이 프로는 방송중 그 연예인의 과거사진을 띄워놓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재밌다고 깔깔 웃는다. 물론 사전에 합의가 되었겠지만, 남의 사진을 웃음거리로 삼는 다는 것 자체가 참 불편하다.
사람들이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 지내면서 한국과 가장 크게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것 중에 하나가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점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할 당시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된다는 사실에 내 유럽인(국적이 다양하므로 뭉뚱그려 유럽인이라고 하겠다.) 친구들은 큰 충격을 받아했었다. 동선 공개로 인해 확진자의 거짓말, 잘못된 행동 등이 들통나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을 들었다고 하면 더욱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대응은 성공했었지만, 만약 유럽인들에게 코로나가 퍼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데 동의하냐고 묻냐면 대다수가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점은 공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서 그들의 사생활과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대통령인 마크롱과 영부인의 러브스토리를 들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통령과 영부인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없다. 그가 능력이 있느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만한 재목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그 부부의 이야기가 나름의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엘리제 궁으로 쫓아가 당신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명인에 개인사에 대해 대중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는데 대한 대가는 그렇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게는 과거 사진부터, 크게는 연애사나 친구관계, 가족사까지 까발려지기 십상이다. 대체로는 타인에 의해서 강제로 이루어지고, 남의 사생활을 전달하는 사람도, 그걸 듣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대중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타의로 알려진 사생활에 흠이 있으면 모두들 그 사람의 개인 SNS나 관련 뉴스, 회사 등으로 달려가 악플을 달고 항의 전화를 한다. 가끔은 이런 사생활이 창의력이 뛰어난 누군가를 만나 2차 가공되어 더욱 파란만장한 루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것은 유명인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루어지는데, 회사나 학교 안에서 만난 개인의 사생활을 논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일같이 이루어지는 일상 중 하나다.
우리는 판사가 아니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판단하고 심판할 권리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남의 삶을 관음 하는데 열광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다 같이 대동 단결해서 달려든다. 그럴 때면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누군가 내게 도덕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연예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벌거나, 기업의 오너가 되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거나, 정치인이 되어서 정치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냐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사생활과 별개로 그 사람은 뭐든 될 수 있다. 다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개인적으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와 보상을 하고, 죄를 지었다면 법원에 가서 심판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에 의해 공개 처형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안다. 부도덕한 사람이 부를 축적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게 꼴 보기 싫을 거라는 거. 나도 그런 사람들이 꼴 보기 싫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끝없는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을 지고, 또 흐르는 시간과 함께 그 일들을 보내주며 살아간다. 지나간 일들을 붙들고 평생 개인을 평가한다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신이 재밌다며 이야깃거리로 삼은 사생활 속 주인공이 언젠가 당신이 될 지도 모른다. 타인의 사생활 뒤에 놓인 것이 무엇이든 그의 책임으로 남겨놓는게 어떨까. 그것이 우리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 되어 줄 것이다.
한편, 이렇게 사생활을 존중하는 유럽 문화에서도 성범죄자, 특히 아동에 대한 성범죄자나 페도필리아에게는 굉장히 가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 역시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경우 애시 당초 법원에서 형량이 크게 나와서 알아서 사회에서 격리되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인의 잘못을 직접 심판하러 드는건 형량이 낮아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법이란게 구멍이 큰 채라서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법의 규제를 피해서 못된 짓 하며 사는 사람이 많지만, 시간이 흐르고 법도 개정에 개정을 거쳐 더 촘촘하고 명료한 판결을 내릴 수 있어 지길 바래본다.
유럽은 잘하고 있고 한국은 못하고 있다라는 글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한국의 관점에 공감하는 게 훨씬 많으니까. 유럽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예시일 뿐이고, 이 글에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더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