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잠든 사람

(1) 검은 이빨

by Zwischenzeit



내가 기억하는 오래전 할머니의 미소는 검다. 적어도 내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할머니는 검은 틀니를 끼고 있었다. 검은색도 색소를 바른 것처럼 치아 전체가 마냥 까만 것이 아니라 철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단연코 앞니의 기계적인 느낌이었는데, 가운데는 조금 푸른색에 겉에 장식처럼 철사로 둘려있던 모양새였다. 틀니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치아가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장치이지만, '검은니'는 치아가 없는 자리에 형태만 갖춘 것을 끼워놓은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여하튼 할머니는 평소 틀니를 의식하지 않은 채 환하게 웃곤 했다. 그럴때마다 왜 검은색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딱히 검은니의 부자연스러움이라던가, 그래서 바꿔야 한다던 가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 검은니는 사라지고 맑은 상아색의 번듯한 새 틀니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마냥 잘된 일이지 그 검은니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타이밍도 자연스럽게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우리 가족에겐 할머니의 검은니는 일상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상한지 아무도 묻지 않아서 물음을 삼킨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혔다가 불현듯 생각났다. 그 이후로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고 있다. 어떻게 검은 틀니를 잊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꼈다 뺐다 하는 틀니라기보다 웃을 때 드러나는 '검은니'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것을 빼는 순간이나 빼놓은 상태를 본적이 없다. 상아색 틀니는 자주 빼서 세척하거나 보관함에 넣어놓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유독 검은니는 그런 기억이 없다.


조용한 방에서 할머니가 차려준 심심한 밥상 앞에 앉아 말없이 밥을 씹을 때면 틀니 특유의 마찰음이 들릴 때가 있다. 완전히 밀착되지 않아 음식을 한번 씹을 때마다 조금 빠졌다가 다시 끼워지는 소리다. 틀니는 아무래도 절삭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끼긱 끼긱 하는 소리가 난다. 특히 씹기 어려운 질감의 음식을 씹을 때는 앞니보다는 옆으로 먼저 음식을 밀어넣은 다음 턱을 돌려가며 음식이 최대한 틀니에 맞닿아 부서지도록 의식하며 먹는다. 그래도 할머니는 떡을 좋아해서 수수 팥단지나 앙꼬떡을 가끔 해 놓고 먹었다. 크기는 한입 크기로 매우 작았고 유난히 부드럽게 반죽이 되어 치아로 끊으면 둥근 모양은 너무 쉽게 허물어져 치즈처럼 길게 늘어졌다. 요즘 할머니의 주식은 작은 군고구마와 알갱이가 잘게 부서진 팥죽, 그리고 물만두다. 이 음식들은 쇠숟가락으로 간단히 도려진다.


검색창에 '검은 틀니' 혹은 '쇠 틀니'를 검색해봤더니 내가 찾는 이미지나 내용은 없었다. 이따금 틀니에 검은 플라크가 끼는 경우가 있는 것인지, 틀니를 관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오지만, 머릿속에 존재하는 검은니와 유사한 경우조차 찾아볼 수 없다. 엄마에게 할머니의 검은 틀니에 대해 기억하느냐고 물었다가 되려 그런 게 왜 궁금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기억할 필요가 없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귀찮은 일로 여겨진다. 나는 단지 그 검은니는 왜 존재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갔는가? 에 대한 질문의 간단한 답을 알고 싶다. 그러면 그것은 의문이 아니라 단지 할머니의 미소로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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