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보부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늘 가방에 여러 가지를 지니고 다녔다. 주로 외출하는 곳이 교회여서 무거운 성경책도 챙겨야 했고, 여러 가지 봉투와 중요한 물건들, 열쇠,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들도 몇 개 있었다. 게다가 박하사탕, 스카치 사탕과 과자 등도 넣어서 다녔는데 이건 우리 세 자매가 방문하는 주일마다 지니고 있었다. 과자는 항상 빠다코코낫과 계란과자였는데 사탕과 마찬가지로 둘 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왜 안 먹느냐고 하는 걸 싫어서 안 먹는다고 했는데도 할머니는 매번 과자 먹을 거냐고 이 두 개를 꺼내 보였다. 빠다코코낫은 너무 달고 무겁고 한번 뜯으면 보관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한번 뜯으면 꼭 다 먹어야 할 것 같았는데, 양은 또 어찌나 많던지 엄두가 안 났다. 또 잘 부스러져서 어린 손으로 조심스럽게 먹기 힘들어서 늘 다 부서진 과자를 모아서 먹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끝엔 꼭 손에 끈적한 게 묻었기도 하고. 계란과자는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무난한 맛이어서 항상 가방에서 계란과자가 나오면 실망하지 않고 체념하고 먹을 정도까진 됐다. 할머니 속회모임이나 예배당에 내가 멍하니 앉아있을 때면 가방에서 등장했다. 자극적이지 않아 탄력받으면 앉은자리에서 한 봉지 다 먹을 때도 간혹 있었는데, 그럴 땐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하나를 더 사서 들어갔다.
나는 바나나킥이나 빼빼로 같은 게 좋았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과자라는 건, 그러니까 과자 세계는 빠다코코낫과 계란과자 이 두 개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늘 이 두 가지만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던가 과자 그 자체의 의미가 있는 것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강의 빠다와 코코낫 맛은 내 안에 소화될 수 없었다. 빠다코코낫을 떠올리면 먹어보지 않아도 바로 맛과 향을 상기시킬 수 있다. 이후에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마가레트가 그 목록에 추가되었는데, 쉴 새 없이 까먹는 걸 보고 서랍장엔 마가레트 큰 사이즈 상자들로 꽉꽉 들어차게 되었다.
지금은 먹기도 힘들고 그냥 넘겨버리면 위험한 사탕도 없고, 오래 씹어야 하는 단단한 과자들도 할머니에게 아무 효력이 없다. 할머니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카스텔라나 단팥빵만이 허용된다. 그리고 메마른 목에 걸린 음식을 넘겨줄 칠성사이다, 그뿐이다. 동인천역에 내리면 습관적으로 할머니 집 반대방향의 번화가 쪽 출구로 나간다. 프랜차이즈 빵집에 들르기 위해서다. 가끔 맥도날드에 들러 달달한 불고기버거를 사가는 날도 있긴 하지만 주로 주전부리를 위한 빵집에 들어간다. 이런저런 빵을 고심해서 고르다가도 결국 내 취향을 접고 그 두 가지를 담은 봉투를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손에 들린 매번 같은 빵류들을 보고 이걸 먹기 싫은 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뭘 사 가야 하나, 라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깨닫게 된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국 같은 것을 사가는 이 기분이었던 걸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