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머릿속에 옛집의 구조가 선하다. 그와 같은 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부근 집들이 조금씩 유사하겠지만, 모두 다 다른 구조로 생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부엌과 그곳에 난 작은 창이 있었고 방과 방 사이는 복도가 없어 신발을 신고 이동해서 건너가야만 했다. 그리고 옥상이 있었다. 겉으로 보나 안쪽을 보나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었지만 화장실로 가는 복도와 화장실 내부에 드러난 뼈대는 분명 나무였다. 할머니 방의 미닫이문도 나무, 창틀도 모두 나무였고 여닫는 문도 모두 나무였다. 구성으로만 보면 특이한 것은 없지만, 그때 할머니 집과 같은 느낌의 구조를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다. 살아가면서 편의상 점차 만들어버린 것 같은 부분의 생김새들과 여전히 불편한 요소들이 모여있는 내부가 풍기는 느낌이 어딘가 요상했다.
일요일 예배 후 집에 가족들이 모이면 우리 셋과 친척 동생들 모두 옥상을 왔다 갔다 하며 놀았다. 옥상엔 별다른 울타리가 없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 말라버린 토마토 줄기를 구경하거나 저물녘 뒤로 지나가는 전철 풍경을 구경했다. 할머니 방을 제외한 나머지 방 하나는 삼촌들 방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시절 삼촌 네 명은 그 방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싶다. 나는 삼촌 방에 들어가 컴퓨터로 버디버디를 하거나 둘째 삼촌이 보고 울었다면서 틀어준 ‘반딧불이의 묘’를 재밌게 보는 척했다. 삼촌들은 친구나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진한 남자 향수와 담배 냄새가 밴 그 방에서 아이들과 형제들과 잘도 놀았다.
화장실은 볼일을 보면 잔뜩 찌그러진 알루미늄 대야에 물을 채워서 내려보내야 했다. 나는 그 화장실이 싫어서 그곳에서 샤워도 해본 적이 없다. 들어가면 얼른 나오느라 그 집의 화장실은 물건들의 집합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부엌은 안방과 연결된 문과 바로 바깥 복도로 연결되는 문 이렇게 두 개가 있었다. (지금 할머니 사는 집도 이러한 구조이다.) 주변 집들 구조 대부분은 1층은 점포 2층은 사람이 사는 집으로, 근대적인 일본식 집 구조였다. 지금 그 자리에 가보면 그 집들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딘가로 떠났거나 집이 개축되어서 구조가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그 집을 정면에서 봤을 때 보이는 창문은 할머니 방 창문이었는데,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차에 타서 창문 쪽을 바라보면,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을 펼쳐서 흔드는 것이 아닌, 항상 ‘딸랑딸랑’할 때의 손 모양으로 인사를 했다. 그 집을 생각하면 연달아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배웅해주는 모습이다. 나는 아빠 차 조수석에서 올려다보고, 할머니는 내려다보며 손을 딸랑딸랑. 맞이하고 배웅하는 입장.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직전에 집이 어땠는지, 도대체 이사는 언제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알 턱이 없어서 기억 속의 집이 그립고 궁금해질 때쯤 예전 집 자리로 가서 수차례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사라져서 터만 남은 것도 아니고, 분명 거기에 있는데 많이 바뀌어있다. 바뀌었다고 그 집이 아닌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집인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만 있는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