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시장에 유난히 한복 집이 많았던 이유를 알게 된 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할머니 키의 반절만 할 때부터 손잡고 계 모임을 따라다녔는데, 컴컴해진 시간 인적없는 배다리 시장을 말없이 걷다 한복 집에 들어가면 바닥보다 높은 턱의 장판 마루가 너무나 따뜻해서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말투 때문이었는지 성격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할머니는 적당히 살갑지 않았고 용건만 전달하는 깔끔한 의사소통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마음 두는 친구는 집에 자주 찾아오는 같은 교회 권사님들이었고 그마저도 속회모임이나 새벽기도, 일요예배 때 잠깐씩 만나는 것뿐 항상 시간을 혼자 많이 보냈다. 그렇게 좁은 인간관계의 할머니가 나름 여기저기 찾아갈 데가 많아 보였던 이유는 대부분이 동향(同鄕)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배다리 시장 일대는 한국전쟁 후 인천에 있던 황해도민들이 형성한 점포들이 많았다. 할머니는 천을 떼다 팔면서 바느질삯으로 먹고살던 고향 사람들과도 오래 알고 지내게 된 것이다.
어느 저녁 할머니가 외투를 촘촘히 여며주고 여느 때처럼 말도 없이 배다리 시장을 걸어 한 한복 가게에 들어갔을 때였다. 무슨 말씀을 나누는지 알아듣지 못할 만큼 어려서 길어지는 대화시간에 지루해질 참에 너무 오줌이 마려웠다. 갑자기 마려운 것은 아니었고 나는 종종 오줌이 마려워도 쉽게 오줌이 마렵다고 말도 못 할 만큼 부끄럼을 탔기에 못 참을 때쯤엔 이미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얘기하자 한복집 할머니는 벽 쪽에 얇게 붙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긴 복도가 나오는데 그 복도의 끝에 화장실이 있으니 어서 볼일을 보고 오라 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할머니가 따라 올라올 텐데 그날은 혼자 가보라 하고 금세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밀은 아니지만 은밀해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질적인 나무복도가 펼쳐졌다. 넓은 복도도 아니고 미닫이문으로 이루어진 벽을 따라 가장자리로 난 복도의 모양새로, 옛날 일본 주택 내부 구조를 거의 유사하게 구현해 놓은 형태였다. 하여튼 한복집 할머니 말대로 복도는 좁고 길었고 그 끝엔 변기 하나 들어갈 만큼의 작은 화장실 한 칸이 있었다. 시원하게 누고 그제야 눈이 좀 뜨여서 계단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변을 살폈는데 지나올 땐 보지 못했던 미닫이문의 틈이 보였다. 간이 작아서 안을 똑바로 볼 생각은 못 하고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살짝 보았다. 문은 많았지만 정작 안쪽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방일 뿐이었고 그 안에 내 또래쯤 되는 여자아이가 이불을 덮고 어둠 속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 잠시 동안에 그 애랑 눈을 마주쳤는데 뭐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그 당시 실제로 내 귀에 분명히 들리지 않았거나 그냥 기억에서 지워진 듯하다. 그렇게 후다닥 내려와서 할머니를 재촉해 그 가게를 떠났다.
원래 할머니 집에 가려면 도원역에 내려서 천천히 걸어 내려가곤 했는데 이제는 동인천 급행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려서 한복 거리를 거슬러 올라온다. 그러면서 영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가게들을 보다가 그 위층을 유심히 본다.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 내 기억 속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여전히 영업하는 가게도 있거니와 이상한 말이지만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 나로선 익숙하고 고맙다. 그래서 나는 그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내부를 보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 사람의 크기에 꼭 맞지만 조금 낮은 듯한 천장, 나무 창틀의 부드러움, 이해 할 수 없는 구조들을 떠올린다. 이런 내 기억 속의 장면들 때문에 나는 가끔 사람의 흔적이 지워져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 그때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공간들을 샅샅이 뜯어보는 상상을 한다. 아직 거기 그대로 있나, 하고. 늘 궁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