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와 곰팡이 식빵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지만, 할머니 집 냉장고를 열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요구르트 마신다고 두 번정도 열어본 것 같은데 할머니 집에 있으면서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어본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 냉장고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고 정체불명의 봉투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냉동고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 명절 때 빚을 만두 재료를 잠시 보관하거나 하는 용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의식에 꺼려졌던 이유가 하나 있는데, ‘햄스터 괴담’ 때문이다. 삼촌들이 아주 잠깐 햄스터 두 마리를 키웠던 적이 있는데 그 두 마리가 플라스틱 집을 탈출하여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햄스터는 병아리처럼 어디서나 쉽게 장난감처럼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여느 때처럼 주일예배를 마치고 할머니 집에 모였는데 햄스터에 대한 얘기를 우리가 듣게 된 것이다. 햄스터가 있다고? 우리는 흥분했다. 엄마는 학교 앞 병아리조차 사지 못하게 했다. 우리 세 자매는 항상 작고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존재를 갈망했기에 햄스터를 볼 수 있음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보여달라고 팔을 붙들고 조르는데, 이미 없다는 것이었다. 삼촌들은 햄스터가 탈출해서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했다. 늘 쥐새끼를 왜 키우냐고 했던 할머니가 냉동실에 넣어 얼려 죽였다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남자의 목젖은 알사탕을 통째로 삼키다 걸린 것이라고 말했던 장난기가 심한 둘째 삼촌이어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삼촌은 자신들도 믿기지 않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으면 냉동실을 열어서 뒤져보면 저 안쪽에 햄스터 사체가 있으니 열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다 엄마가 중재하고 나서는 바람에 진실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물론 지금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 집은 틈이 워낙 많아서 어딘가에 빠져 죽었거나 밖으로 나갔다가 고양이들의 먹이가 되었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장난의 영향은 오래가지 않고 잊혔음에도 이상하게 효력이 계속해서 남아있어 냉장고는 금기의 대상처럼 접근할 일도, 접근하지도 않게 되었다. 할머니와 얼어 죽은 햄스터는 매치되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하게도 어릴 땐 만에 하나 왠지 그랬을지도.. 라는 생각을 한동안 품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나를 사랑하고 관대하지만, 어딘가 단호한 구석도 있고 관심 있는 것 외에는 모두 관심이 없었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존재를 힘들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해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모나미용실>과 같은 시기의 일이다.
여름방학 대부분은 미술학원에서 보낼 때였는데 그때 잠시 며칠간은 할머니 집에 가 있기도 했다. 그때는 집에 있어봤자 별로 행복한 일이 없었다. 집안도, 밖도, 학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할머니 집에 가서 벌러덩 누워 시간을 보내곤 했다. 2~3일 동안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낡고 서늘한 집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은 창고 방이 되어버린 삼촌 방에 머리를 문지방에 걸칠 듯이 누워있었을 때였다. 할머니가 갑자기 냉동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느 가정집 냉동실처럼 검고 하얀 봉지에 알 수 없는 식품과 재료들이 한데 엉켜 있어 꺼내 펼쳐서 그 안을 들여다봐야만 내용물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하나하나 열어보고 다시 차곡차곡 넣는 행위를 반복할 무렵 한 빵 봉지 봉투를 열어 그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누워있는 나를 등지고 있어서 무엇을 그렇게 한참 부스럭대는지 몰라 오히려 그 모습을 나 또한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꺼내 들어 손에 든 음식을 입에 야금야금 갖다 대고 있었는데 몸을 일으켜 자세히 보니 푸른색의 식빵이었다. 애초에 냉동실에 있었다면 곰팡이로 뒤덮일 일이 없는데... 곰팡이가 닿지 않은 식빵의 흰 부분을 조금씩 베어먹고 나머지를 버리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기겁해서 왜 그걸 아까워하느냐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고 버리겠다고 하고 다시 잘 싸서 냉동실에 넣으려고 했다. 나는 그 빵을 쓰레기통에 넣을 때까지 계속해서 버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푸르디푸르기도 힘든 곰팡이의 덩어리였다. 이면지를 쓰고 또 쓰는 것과 물건의 부분까지 쓰고 또 쓰는 것이 무슨 마음인 줄 알기에 버릴 수 없는 습관이라는 걸 알지만, 단순히 푸른 식빵의 비주얼이 머릿속에 충격적인 이미지로 저장되어있다. 두려운 냉동실, 미지의 냉동실은 앞으로도 열어볼 일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