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입학식, 졸업식이면 온 가족이 몰려갔을 시절, 우리 가족도 예외 없이 한껏 차려입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사진 찍고 껴안고 꽃을 들고 있었다. 정말 누군가의 입학인지, 졸업인지도 모른 채 옷을 두껍게 차려입고 손을 잡고 갔던 때. 나는 언니한테 물려받은 초록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나의 시야는 너무 낮아서 손을 놓치면 인파 속에 미아가 되기에 십상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앨범을 보다 사진으로 그날이 누가 주인공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저런 있었던 일들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회상할 정도로 희미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주로 부정적인-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나는 둘째 삼촌의 대학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찡그린 채로 할머니에게 안겨있었다.
나도 언니처럼 삼촌에게 안겨 높은 시야를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자주 삼촌들만 보면 안아달라고 졸랐다. 말을 잘 듣거나 잘 따르면 귀여워해 주면서 안고 부둥부둥 해줬고 나중엔 오토바이도 태워줬다. 속도감이 어찌나 끝내주는지 모든 풍경이 실선의 연장으로만 보였다. 그런 양아치 삼촌들한테 높지만 안락하게 안겨있는 느낌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자꾸만 할머니가 나를 안으려고 했다. 분명 삼촌한테 안기고 싶다고 했는데도 할머니는 또다시 원위치로 데려갔다. 왜 그랬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할머니한테 안기면 땅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 거의 나질 않았다. 그리고 단단히 날 받쳐주기보다 몸을 뒤로 살짝 젖혀서 안고 있는 모양새 때문에 더 불안했다. 그때는 삼촌이 날 미워하고 언니만 예뻐해서 일부러 골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너는 나한테 안길 자격이 없어. 결국 짜증이 나서 울어 재끼는 나 때문에 사진 찍는 건 엉망이 되어버렸다. 어른들은 애들이 울면 웃으면서 더 놀리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짜증 날 수가 없었다. 나의 강력한 항의의 언어였던 눈물이 통하지 않고 놀림거리로 전락하자 정말이지 깊은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사진에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고 있었다. 특히 나를 힘껏 안은 할머니가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