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할머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애도를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시점에는 미래에 다가올 일에 대한 예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나를 포함한 더 큰 역사 혹은 서사에 대한 접근이었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의 이미지를 소비하기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바르트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하는 일이 애도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표면적으로는 애도의 몸짓이라 할 수 있겠고, 나 또한 그런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애도할 수 없다. 애도는 할머니의 물건을 취하는 일과 같다. 물건의 주인이 숨쉬고 있을 때 그 물건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도를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어떻게 할 수 없이 시간이 스쳐지나간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산다. ‘이렇게 보낼게 아닌데, 이렇게 보내서야 되는건지’라는 물음만 있고 대답은 항상 미뤄둔다. 그러다보면 할머니가 동동 떠다닌다. 그 말풍선들 옆 생각풍선안에는 낙상방지침대에 걸터앉아 티비를 멍하니 보는 할머니가 들어가있다. 내가 바쁘게 살면 살수록 영원할것만 같은 할머니의 하루와 대응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덩달아 멍하고도 쏜살같은 평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 저녁쯤 아무도 모르게 할머니 집을 방문한다. 찾아갈 땐 달리 주변에 알리는 편은 아니다. 특정 이유가 있는것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찾아가는 것을, 찾아가는 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또한 그냥이라고 해도 그냥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이유인것도 아닌 것은 사실이다. 어느날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할머니 집에 보일러는 작동되는지를 떠올리며 집 안에 들어갔더니, 할머니 저녁을 챙겨주러 온 아빠가 할머니 옆에 이불깔고 누워있었다. 왠일인지 할머니는 불편한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있어 인기척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 방은 따뜻해서 아빠도 깊게 잠들어있었다. 그러다 왠 사람이 와있나 싶어 갑자기 놀랄까봐 아빠를 살살 깨웠더니 아빠는 할머니 들으라고 크게 소리쳐 깨웠다. 만두를 살살 삶아 저녁으로 드리고 아빠는 담배를 태우러 밖에 나갔다. 내가 오기전에는 방안에서 피운게 분명했다. 이전까지는 할머니의 질문에 이런 저런 대답을 무한반복하며 물건들이나 사진들을 들여다보는게 루틴이었다면 그날은 그저 눈으로만 둘러보다가 별로 손대고 싶지 않았던 오래된 사전을 가지고 가겠다 마음먹었다. 그것은 할머니의 물건이 아니었고, 엄연히 말하면 아빠의 물건이어서다. 실은 이전에 작업하겠답시고 할머니 물건 몇 개를 휴지에 돌돌 싸서 가져갔다가 상자째로 잃어버렸었다. 물건 관리를 소홀한 탓도 있었지만 워낙 추레한 물건처럼 보관한지라 버리는 줄 알고 누군가 진짜로 버려 버렸다. 그것들은 오래된 취침등, 아빠의 첫 자동차 관련 서류, 할머니의 여러 텍스트 들이었고 내겐 둘도없이 중요한 물건들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론 바라만 볼 뿐 임시적으로 소유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물건들을 작업의 부분이자 보조적인 역할로 가져왔다는 것을 타인들도 은연중에 느꼈던게 틀림없다. 휴지에 싸던 유산지에 싸던 진실로 할머니 그 자신처럼 아꼈다면 그렇게 다뤄졌을리 없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증조할아버지가 쓰던 사전은 방치하다시피 되어있어 종이를 건들면 바스라졌다. 거의 썩었다고 볼 수 있는 종이뭉치가 상할까 잘 눕혀서 가져왔다. 사전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은건 그리 대단한 의도는 아니다. 아빠가 가져가라고 허락해줬기 때문이다. 다만 종이 사이사이엔 영수증 쪼가리들이나 증조할아버지의 메모 하나가 있을 뿐. 언젠가 삼촌이 이 사전은 오래되어서 소중하다고 한 말이 기억났는데, 결국 이렇게 손대면 손댈수록 바스라지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내가 잃어버린 할머니 물건들도 작업으로의 역할이 끝나고 내 손에 마냥 쥐어지기만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다른물건을 집어야 할 때 그 물건들을 처분했으리라 생각된다. 물건과 사람을 동일시하는건 아니지만 시간앞에서 여전히 어쩔줄 모르게 될 때 기록을 해야하는 것인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무엇이라도 해야하는지 혹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