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연락에 대해 무심하기도 하고 급하면 문자를 남기거나 다시 전화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연락들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은 숨돌릴 틈 없이 일이 바빠 걸어놓은 착신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퇴근하기 45분전 즘 아빠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왔었다. 평소에 부모님은 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짧은 안부를 묻곤 해서 이번에도 그런 일이겠지 하고 넘겼다. 전시를 앞두고는 후회와 자책과 함께 계획을 수정하고 허리를 붙잡고 침대에 누웠을 때 가족 카톡방이 울렸다. 아빤 카톡을 콜 받을 때만 쓰기에 가족 카톡 방은 엄마, 언니, 나, 막내 넷이서 강아지 사진을 주고받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할 때 쓰곤 했다. 주로 동생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편이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쓸 사진을 골라달라고 할 때나 날씨, 새로운 뉴스, 화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요양원 들어갔대. 이번엔 엄마였다. 사실 이전부터 할머니의 요양원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할머니가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는 시간텀이 눈에 띄게 짧아지기 시작하고 새벽 3시마다 아빠에게 전화했으며 마침내 혼자 집을 나섰다가 넘어지고 나서부터는 비로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내가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무런 징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이라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나 적어도 어떤 언급이나 예정된 계획을 공유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집을 방문했던 게 그 집에 할머니가 앉아있던 풍경을 본 마지막이 될 줄이야. 할머니를 돌보는 것에 있어서 일정 시간 집에 혼자 계시는 것보다 요양원에 가는 게 가족들의 바람이자 내 바람이긴 했으나 이상하게도 할머니집에 할머니가 없다는 것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일렁이고 혼란스러웠다. 이상하다, 늘 할머니 집엔 할머니가 있었다. 동시에 할머니의 물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 공간은 비운 채로 두는건지 궁금해하는 나 자신이 역겨웠다. 밤이 늦어 새벽 시간이 되었지만, 아빠에게 전화를 걸기로 한다. 아직 일하는 시간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이나 신호음 속에서 기다려봐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부재중전화가 생각났다. 오후 5:14분은 할머니를 데리고 요양원으로 떠날 때 쯤인 시간이었나 보다. 아빠는 내게 알리려 했다.
전화를 못 받은 내가 바보 같아서 누운 채로 울었다. 망할 나의 버릇 때문에 중요한 전화를 놓쳤다. 전화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동행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집에서 나오고, 이동하고, 요양원에 들어가는 과정이 있는 시간대를 함께하지 못한 점이 후회스러웠다. 문을 열면 침대에 걸터앉은 할머니가 티비로 고개를 틀고 있어서 뒷모습이 보였었다. 이제 다른 공간의 문을 열면 조금 다르게 존재할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과하게 감상적이지 않아. 너가 생각하는 건 너 좋을 대로 환상을 덧씌워 바라보는 것일 뿐이야.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엇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난 것처럼 유난떠는 건 그만두자. 이런 생각할 시간에 나는 면회 일정이나 생각해보자고 다짐한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이 시간을 잡아두려 하는 일인 것과 동시에 미래를 어느 정도 예비한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예비가 될 거로 생각했다. 알아서 되는 것이라고. 이렇게 계속해서 할머니에 대해 말하다 보면 무뎌지고 덤덤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어찌 됐건 준비가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