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엑스러브는 시간을 들여서 재물을 쌓아가고 기술도 배우는 만큼 아는 사람이 생겨서 친목을 다지는 게 묘미라면 묘미였다. 채팅창 오른쪽에 떠 있는 디지폰은 캐릭터 간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장치였는데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접속하자마자 안부를 걸거나 안부를 물어오는 것에 대답하는 게 순서가 되었다. 그것도 아니면 ‘/다돌려놔1’에 있으면 언제든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아이템을 줍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대화하거나 아이템을 사고 팔며 필드를 뛰어다니지 않아도 게임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커서를 바쁘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걸 보던 동생이 곧 자기도 하나 만들겠다고 했다.
수현이가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 보다.
원하는 시간에 컴퓨터 하려고 할 때만 서로 싸웠지, 플래시나 웃긴 만화는 같이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각자 캐릭터의 인생을 열심히 키워야 하다 보니 컴퓨터 사용 시간에 예민해졌다. 둘이서 더 하느니 마느니 하던 게 어느새 언니까지 합류해서 한컴퓨터 1 계정 3 캐릭터의 첨예한 시간분배가 시작되었다.
정확히 얼마간 게임에 몸담았는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게임을 했다기보단 현실의 내가 못 하는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유함을 느끼는 고유한 세계를 천천히 구축해 나간 일이었다. 제한 없는 평화의 세계에서 가족도 생기고 결혼도 해봤다.
세 자매가 하나의 게임에 매달려 몰두했지만 단연코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언니였다. 언니는 게임 속에서 인기가 많았다. 유저의 나이대는 초등학생부터 30대 후반 정도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언니는 부러 아이템을 줍거나 구걸하거나 부자들이 뿌리는 아이템을 먹으려고 하지 않고 인맥을 쌓아 게임에 적응한 사례다. 그 당시 공식 카페였던 다음카페에 웹캠으로 하두리 셀카를 찍어서 자주 올리곤 했는데, 그곳에 사진을 올리며 안면을 트게 된 비슷한 나이 또래 유저끼리 친해지게 된 것이다. 언니의 친구들은 언니가 빨리 적응해서 함께 우주로 사냥을 나갈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특히, 우정석을 턱하고 내어주며 기술을 빠르게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던게 기억에 남는다. 나와 동생은 언니의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감탄했다. 언니는 어느새 우주 몬스터 중에서 가장 강한 만용이 사냥팀을 꾸릴 정도가 되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교복 차림으로 매일 만용이 사냥을 나갔다. 만용이 사냥 보상으로 굳이 캐시의 도움 없이 재산을 불려 나갔다.
나름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게 된 언니가 있어서 좋은 점은 넉넉한 사람의 관점에서 게임을 플레이해보며 더 많은 것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자체가 워낙 잔잔해서 일정 반열에 오르면 정지된 채로 흘러가는 식이지만 언제나 부유한 캐릭터의 여유와 자유로움은 부러운 일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간을 할애해야 게임 속에서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더 하고 싶은 법이다. 특히 유저 접속률이 높아지는 저녁 시간대에는 서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려고 용을 썼다. 주말에는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새벽같이 깨서 모두가 자고 있을 때 접속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명이 깨고, 이후에 나머지 한 명마저 깨면 급기야 5분씩 돌아가면서 서로의 캐릭터로 들락날락했다. 방에 달려있는 시계 초, 분침이 가는걸 빤히 보다 약속한 5분이 다 되었을 때 안 나오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굴었다. 한번은 바다 아이템을 주우려고 잠수하다 5분만 하고 10분 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자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유저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게임을 하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