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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축복 좀요

(5) 축복 좀요

by Zwischenzeit


간혹 이엑스러브를 검색하면 과거 유저였던 사람들이 그리움에 파묻혀 적어놓은 게시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그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막상 게임에 대해 차근히 곱씹어보며 설명을 늘어놓으려니 표면적으로는 일반 게임의 속성과 다를 게 없거니와 더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특징을 꼽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다돌려놔’와 ‘기술’이다. 그 중 ‘/다돌려놔’는 모든 유저가 사람이 모이는 광장에 도달하기 위해 매일 가장 많이 외치는 주문이며 일종의 ‘포탈’로서 사람들이 거래하고 만나고 장사하는 광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축복 기술은 단어 그대로 축복을 내려주는 기술이다. 축복 기술을 배운 유저가 다른 유저에게 축복을 내려주면, 축복받은 유저는 소진되었던 hp/mp가 회복된다. 축복 기술이 특별한 이유는 광장 어디에서나 축복 구걸을 하는 풍경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초보자가 아이템을 줍다가 만난 몬스터에게 당한 후 온 hp를 소진 당하고 다시 힘내서 미로 숲으로 가야 할 때,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축복을 내려주기를 부탁한다. 그럼 반드시 누군가는 축복을 내려준다. 게임 내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달리기 경주에서도 축복 기술이 꼭 등장한다. 부유한 유저들이 아이템을 걸고 개최한 달리기 시합이며 맵 가장자리를 감싸는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지만, 회복제의 도움 없이 계속해서 달리기엔 불가능하다. 탈것(차량, 스쿠터 등)에 탑승하거나 달리기가 빨라지는 의복이 금지되어 모두 순정상태의 캐릭터로 공정하게 달려야 한다는 룰이 있고, 큰 보상이 걸려있으므로 가난한 유저들이 많이 도전하곤 한다. 그러나 회복제를 살 돈이 없어 다른 이의 축복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레이스 내내 ‘축복 좀요’를 외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축복이 없으면 레이스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게 틀림없다. 그러나 대개 축복은 이어진다. 달리는 와중 여유 있는 누군가가 축복을 쏴주는가 하면 애초에 축복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쏴주기 위해 레이스의 뒤 대열에서 같이 달리는 유저들도 있다. 승패나 아이템의 획득에 상관없이 재미를 위해 만든 레이스 속에서 간절한 초보자들 뒤를 따라가며 도와준다. 나는 바로 이 축복을 항상 간절히 바라던 유저로, 모르는 이에게 당연하듯 요청하던 것 그리고 당연하듯 축복을 쏴주던 풍경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엑스러브의 핵심이자 정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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