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의 시간, 기획자의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
촬영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다들 말이 없었다. 현장에선 별다른 사건도, 감동도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웃음도, 눈빛도, 반전도 없었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촬영본은 길고 밋밋했다. 그런데도 나는 희망을 품었다.
“괜찮아. 이건 살릴 수 있어.”
현장에서의 감동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콘텐츠 중 반응이 좋았던 영상들 중 다수는, 현장에서는 '죽은 영상'이었다. 텐션도 낮았고, 출연자들도 지쳐 있었고,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은 어색했다. 그런데 후반작업이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편집의 세계에선 기획자의 본능이 깨어난다.
컷을 배열하고, 타임라인을 분할한다. 웃음이 미묘하게 새어나온 장면은 리액션처럼 뒤로 뺐다가 맨 앞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약간은 민망했던 정적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눈빛이 있다면, 나는 그 클립을 세밀하게 확대해 효과음을 얹는다. 들릴 듯 말 듯한 마우스 클릭 소리, 자막이 툭 튀어나오는 팝업 효과, 그리고 은은한 BGM의 초입. 그렇게 짜 맞춰지면, 아무 일 없었던 촬영 현장이 기적처럼 살아난다.
재료는 충분하다. 몇 시간 분량의 클립. 거기서 10분을 뽑아낸다. 남들이 볼 땐 단순히 짧게 요약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기획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매듭들이 있다. 어디서 리듬이 바뀌고, 어떤 표정이 전환점이 되는지. 자막은 그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줘야 하고, 사운드는 순간의 감정을 밀어붙일 줄 알아야 한다.
자막이란 단순히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간의 간격, 말하지 않은 감정, 놀람과 주저함, 동공지진. 그런 것들을 시각화하는 일이다. 평자막으로 다 덮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흐르는 자막이 더 깊다. 디졸브로 지나가는 한 문장은 뉘앙스를 만들고, 흔들리는 자막 하나로 그 장면이 ‘살아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예전에 영화 예고편을 편집했던 기억이 난다. 강렬한 눈빛, 주인공의 표정, 액션. 그런 것만 골라서 붙였더니 의외로 별로였다. 그때 사전제작 파트장이 와서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인물만 붙이면 너무 평면적이야.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걸 넣어야 해." 그 한마디가 강렬하게 박혔다. 그래서 공이 계단 아래로 통통통 굴러가는 장면을 중간에 넣었다. 그 리듬이 화면 전체를 살렸다.
그때 알았다. 컷을 잘 고르는 눈은 경험으로 생기고, 한 장면을 붙일 때마다 감각이 조금씩 예민해진다. 자막도 마찬가지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으면, 영상이 말하게 두어야 한다. 말이 많으면 기획이 약해지고, 말이 없으면 영상이 침잠한다. 딱 그 중간을 찾아야 한다.
효과음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절대 가볍지 않다. 클릭음, 종이 넘기는 소리, 눈을 돌리는 찰나의 소음. 사운드는 생명이다. 뮤직비디오보다 더 정밀하게 감각을 잡아야 한다. 나는 BGM을 고를 때 항상 그 장면의 온도를 생각한다. 찬 기운이 도는 말투라면, 베이스가 깔린 음악은 안 어울린다. 따뜻하고 포근한 장면에는 클래식 기타의 한 줄이 가장 어울린다.
이건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배워서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면서 익힌다. '이 컷은 섬네일로 써야겠구나', '이 시퀀스는 가장 앞에 깔아야겠다'. 그런 직감은 수백 개의 편집을 거쳐 몸 안에 남는다.
실제로 나는 때때로, 아주 많은 걸 찍고 거의 다 버린다. 실패한 영상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한다. 정리의 기준은 '미련'이다. 어떤 클립을 살릴까, 붙일까를 고민하다가 전체 기획의 맥이 무너질 것 같으면 미련 없이 날린다. 지나간 걸 살리려다 지금을 놓치는 일은 기획자로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다.
가끔은 버릴 수 없어서 숨겨두기도 한다. 클라우드 어딘가, 편집 폴더 맨 밑에. 아까운 씬들, 좋은 사람들, 조금 흐릿했지만 따뜻했던 공기. 그걸 추억처럼 간직하는 마음은, 내가 기획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조용한 증거다.
내 작업물은 결국 내가 어떻게 이 장면을 믿고 있는지의 결정이다. 나는 무슨 장면을 살릴까? 무엇을 지울까? 그건 아주 구체적이고, 아주 미묘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래서 최종.mp4는 나의 자화상이다. 자막이 늦게 들어가면, 내가 망설였다는 뜻이다. 효과음이 과하면, 웃기고 싶었다는 뜻이다. 프레임이 끊기면, 내가 그 순간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좋은 영상은 그 모든 결정을 지나온 흔적이다. 그 결정을 감각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망한 영상도 붙잡아 보는 집요함, 효과음을 30개 들어보다 결국 처음 걸로 돌아가는 고집, 아무도 보지 않는 부분에 자막을 새로 입히는 기획자의 뻔뻔함. 나는 그걸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 촬영이 망하더라도 괜찮다. 편집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감각이 깨어나는 건, 그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