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처럼 모두가 보는 티브이에 내가 나온다는건 신나는 일이다. 혹여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물건, 장소나 공간이 나오면 정말 반갑고 행복하다. 마치 내가 나온 것처럼.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이 나왔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뻤다. 이 에피소드는 청춘이라면 남미를 경험해봐야 한다는 도전의식을 심어주며 가슴에 언제가 가보리라 라는 일렁거림을 시청자들 마음이느끼게 했고 많은 이들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날의 배낭여행의 끝판왕. 남미로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남미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마 마추피추일 것이다. 해발 3400m의 쿠스코에 있는 이 비밀 도시의 첫인상은 하얗고 두터운 안개 보자기가고대 제국을 삼켜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일 것만 같았다. 으스름한 새벽의 이슬과 해뜨기 전의 푸르스름함은 그 웅장함을 더해주었다.
고도 때문인지 숨을 헉헉 거리게 되고 올라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몇천 년 전에 이 정교한 도시 건설과 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졌단 말인가. 재료인 돌은 어디서 구해왔으며 건축기술, 설계, 디자인을 보고 있자면 나는 인류 역사에 작은 점일 뿐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되뇌며 살아야 내 존재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겸손해지고 감사해하며 곳곳에 있는 라마에게 인사도 건네고 햇살도 마음껏 누려본다.
혼자 깊은 생각과 사색에 잠겨 선착순 100명만 올라갈 수 있다는 와이나피추 입구에서 줄을서 기다라며 내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단위, 패키지 단위로 여러 명이서 그룹을 지어온 사람들이 많아 위축되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말벗해줄 친구야 만들 수 있으니까!
이런.. 줄이 내 앞에서 끊겼다. 안돼 난 저 멀리 동양에서 이거 보려고 24시간 비행기 타고 왔단말이에요 내 수고를 알아줄 수 없겠나요
속으로 외치고 눈으로 말했다.
-혼자 오셨나요?
-네! 네! 저 혼자예요 혼자!
스페인어를 또박또박하는 게 신기했던 건지 아니면 짠해 보였던 건지 조용히 날 통과시켜줬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이 순간이 뚜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정말 감사했었던 일임에 분명하다.
호흡을 가다듬고왕복 세 시간 코스 스타트!
헛둘헛둘 트랙킹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나를 감싸는 공기, 발 밑에 돌, 땀을 식혀주는 바람, 쌉쏘름한 풀냄새, 험난한 산맥의 전경, 한걸음 한걸음이 신비하고 새로웠다.
누군가와 이 벅찬 감동을 느끼고 싶은데 혼자 하는 여행은 이런 점에 선 조금 아쉽다. 하지만 친구야 만들면 되니까. 앞에 혼자 온듯한 곱슬머리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