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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Feb 16. 2023

03.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이 생긴다. 바로 노란색이다. 이유는 산티아고까지의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와 가리비 문양이 노란색 이기 때문이다. 길 위, 담벼락, 집 벽, 계단, 돌이나 나무에도.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오만 곳에 노란 화살표가 칠해져 있다. 그리고 이 노란 화살표는 갈림길을 맞닥뜨려 얼을 타고 있으면 어김없이 나타나 방향을 안내해 준다. 


“으이구~ 저놈아 저기서 또 헤매고 있네. 이리 와! 이 길로 쭉~ 따라가!”하는 표현은 거칠지만 인정 많은 동네 아주머니, 혹은 쑥스러움과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쭈뼛대며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하는 귀여운 아이처 럼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 운전면허학원 강사님으로부터 길치 확정 판정을 받은 나였기에 800km에 달하는 길을 찾아가는 일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노란 화살표의 든든한 존재감에 두렵지 않았고, 이렇게 노란 화살표의 안내대로 길을 걷다 보니 ‘내 인생길에도 이러한 화살표가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한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만든 현재의 나. ‘아… 그때 그랬더라면…’하는 후회는 언제나 늦은 밤 애꿎은 이불에 발길질을 날리고 도리질을 치게 만든다. 올바른, 더 나은 방향을 몰라 잘못된 길을 선택할 때도 있었지만 사실 이실직고하자면, 더 좋은 길을 알면서도 귀차니즘 사상에 지배된 게으른 정신과 육신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적도 많다. 장기적 안목이나 신중함이 결여된 이 러한 선택은 내가 정한 목적지로의 도달을 방해했다. 


이렇게 목적지로부터 멀리 돌아가는 안락한 길을 택할 때마다 등짝을 후려 치며 “왜 그 길로 가! 이쪽으로 가!”라며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화살표가 있었더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하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는 화살표가 있었더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을까? 길에서 만나는 노란 화살표를 볼 때마다 반가움과 고마움, 욕심과 자기반성까지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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