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그중에서 ‘프랑스 길’은 스테이지 1부터 끝판왕이 등장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첫날의 길. 절경이라는 명성과 함께 고되다는 악명을 동시에 지닌 길이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순례길에서의 첫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역시나 거사를 앞두고 편히 잠들 정도로 나의 담력은 크지 않았으니. 새벽녘 깬 잠은 다시 들 줄 모르고 결국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았는데 군데군데서 인기척이 나는 걸 보면 잠을 설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닌 듯한 게 묘한 동질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산기슭에 있는 마을이라 그런 건지, 원래 이 지방의 날씨인 건지는 모르지 만 동이 트고 나서도 꽤나 쌀쌀한 기운에 첫걸음이 무겁기만 하였다. 하지만 점차 걸음수가 더해질수록 열이 나며 몸도 긴장도 풀려갔다.
그리고 나의 소박한 기대와 설렘은 곧 감당 불가의 환희로 가득 찼다. 길의 초입부터 시작된 오르막길. 그저 쉼 없이 길을 따라 올랐다. 그러자 어 느새 눈앞에 피레네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장관이었다. 오르락내리락 매끈하게 잘 빠진 피레네의 능선은 빽빽한 나무 대신 드넓은 초원이 뒤덮고 있었다. 산맥은 하늘을 스칠 듯 높았고, 초원 군데군데 양과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곳곳에 피어난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붓으로 콕 찍은 점 하나 크 기의 알록달록 꽃들.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고 때론 능선을 훌쩍 넘기도 하는 독수리. 그리고 두 발로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 우리 순례자들까지. 이 모두가 피레네 산맥에 잠시 부는 바람처럼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수수하 게 어우러져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 세 상이 피레네 산맥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더 크고 빨라지기만을 바라는 요즘. 피레네 산맥에 놓인 만물처럼 다른 이들을 배려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조용하고 예의 있게 머무른다면, 지 배자가 아닌 잠시 들렀다 가는 손님처럼 세상을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고 말이다. 아직 몸이 적응 못한 첫날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체 저질 체력인 건지…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거웠지만 헉헉거리는 숨에도 행복한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