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위한, 일명 ‘시작의 마을’이라 불리는 ‘생장 피에드포르 (St Jean Pied de Port).’ 프랑스 남부의 조그마한 마을로 산티아고 순례길 의 여러 루트 중 가장 유명하고 많은 이들이 찾는 ‘프랑스 길’의 시작점이다. 산 티아고 순례길이 아니었더라면 몇 번의 인생이 주어져도 올 일이 있을까 싶은, 소위 깡촌이라 할 수 있는 작고 외진 동네. 이렇게 그 어떤 기대도 없이 도착한 생장에서 내가 뱉은 첫 마디는 “말도 안 돼!”였다.
그저 본격적인 여정을 나서기 전 운동화 끈을 조이는 허름한 신발장 정도라 생각했건만,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위한 라운지 혹은 영화 세트장과 도 같은 이색적인 마을 분위기에 넋이 나갔다. 붉은 기와를 얹은 아기자기한 집들과 골목골목 무심한 듯 질서정연하게 깔 린 블록. 창가마다 놓인 알록달록한 갖가지 꽃들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푸른 강 물. 시간이 아닌 세월을 가리키는 듯한 시계탑과 마을 곳곳에 새겨진 우리 순례자를 위한 가리비 문양들.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듯 품고 있는 초록의 피 레네 산맥까지. 당장에라도 고깔모자에 뾰족신을 신은 난쟁이가 당나귀를 끌 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에 온 느낌이었다.
“어쩜 이리도 예쁜 마을이 있을까? 하아…” 나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소녀소녀함에 괜스레 창피하면서도 들뜬 기분에 첫 걸음을 앞두고 벅차고 설레는 마음, 그리고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해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누워있다 보니 문뜩 ‘내가 어쩌다 이런 지구 반대편 시골마을에 와서 누워있나’ 싶은 게 새삼 어색하니 웃음이 났다. 생장은 시작의 마을이란 이름답게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묘술을 부리 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