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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Feb 10. 2023

프롤로그

프롤로그


때는 바야흐로 2013년.

6개월여의 배낭여행 중 총 세 곳의 트레킹 코스를 걸었고, 이 글은 그중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다.      

자그마치 10년이나 지나서 이 글을 쓰게 된 건 여행 중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썼던 일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눈에 띈 그날의 일기. 책장에 꽂혀있던 일기를 꺼내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기록된 일기장을 따라가니 마치 여행을 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리웠다. 그날의 풍경, 음식, 사람 그리고 그 시절의 내가 말이다. 한번 튀어나온 그 시절의 향수의 여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책으로까지 써보자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겠냐?”

지속적으로 세계여행을 같이 가자며 조르던 친구의 말이다. ‘세·계·여·행.’ 남녀노소 만인의 버킷리스트 필수 항목이자 낭만실현의 최고봉. 단연 거부하기 힘든, 매혹적인 단어. 하지만 그 당시 난 이제 막 취업에 성공한, 열정 넘치는 뽀시래기 상태에다가 나름 일이 적성에도 맞아 친구의 제안에 선뜻 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친구와 매주 만나 술을 마시며 여행에 대한 로망과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의 현실을 저울질할 때, 고모부께서 돌아가셨다. 평소 건강하시고 꽤나 부유한 삶을 보내시던 고모부는 급성백혈병으로 인해 투병 생활 불과 몇 개월 만에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인생이란 참으로 성급하구나.’ 고모부의 죽음으로 인생은 내가 미룬 일을 기다려줄 정도로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고모부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나자’고 결심했다.   

   

친구는 나의 결정에 반색하며 당장에라도 떠날 것처럼 방방 뛰었다. 하지만 낭만은 현실의 잔인한 무게 앞에서 한없이 가벼울 수 있음을. 결국 친구는 막판까지 현실의 무게를 덜어내지 못했고, 나 홀로 여행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난 첫 목적지를 친구가 가고 싶어 하던 ‘산티아고 순례길’로 정했다.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을뿐더러 저렴한 비용으로 유럽에 체류할 수 있다는, 낭만 찾아 떠나는 여행이지만 여전히 현실적 제약에 사로잡힌 발상에 의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큰 기대도 낭만도 없이 시작한 걸음이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 길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빨아올려졌다. 걸음마다 지면으로부터 쭉쭉 올라오는 기운과 쌓여가는 추억으로 인해 길을 걷는 한 달여의 시간은 알차게 채워졌다. 

     

순례와 여행, 순례자와 주민들, 문명과 자연, 고난과 행복, 만남과 헤어짐, 동행과 고독, 이 모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곧게 뻗은 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가엽고도 행복한 순례자의 이야기. 그날을 기억하며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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