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순례길을 걷는 한 달여 정도의 시간.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로 밀도 높은 하루하루로 채워진 한 달은 인생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길다(20대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긴 여정은 중간중간 변곡점을 맞이하고, 그 변화의 가장 큰 지표는 역시나 사람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나에게도 첫 번째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이별의 시간이 왔다.
앞서 말했듯 순례길은 목적지만 같을 뿐 각자의 속도와 경로로 인해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길이다. 헤어짐을 앞둔 ‘부르고스(Burgos)’에서의 마지막 날. 마침 부르고스는 축제가 한창이었고 우리는 간만에 속세에 나온 수도승의 기분으로 마지막 날을 즐겼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오랜만에 맛보는 인파의 기운까지 듬뿍 얻은 하루. 도시 전체에 넘실거리는 축제의 기운에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까지 더해져 오랜만에 야행성 한국인 모드로 돌아가 피로도 잊은 채 밤을 즐기고 싶었지만, 알베르게(Albergue-순례자 전용 숙소) 통금 시간에 맞춰 어쩔 수 없이 끓어오르는 흥을 자제해야만 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잔씩을 더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창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펑! 펑!” 울리는 소리와 불빛에 누웠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창을 바라봤다. 축제의 피날레를 알리는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우리도 나란히 자리한 각자의 침대에 엎드려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터지는 불꽃은 알베르게 안 순례자들의 가슴에 자유를 향한 욕망의 불을 지 폈다. 마치 기숙사에 갇힌 학생이 된듯한 풋풋한 기분이 듦과 동시에, 이 나이 먹고 통금이라는 제약에 갇혀 아쉬움만 꼴깍꼴깍 삼키는 스스로에 대한 웃기 고도 슬픈 연민이 올라왔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모두 같은 생각 을 하는 표정에 위안의 웃음이 퍼졌다.
다음날이면 나는 ‘산 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ín)’를 보기 위해 ‘팜플로나(Pamplona)’로 되돌아가며, 나를 제외한 셋은 버스를 타고 ‘레온 (León)’으로 떠난다. 길이 워낙 길기에 각자의 체력과 일정에 맞춰 이렇게 중간 지점을 버스로 건너뛰는 사람들도 있다. 난 산 페르민 축제를 보고 부르고스부터 다시 걸을 계획이었기에 레온으로 떠나는 일행과는 일주일 정도치의 거리차가 발생하 게 된다. 사실상 앞으로의 여정에서 만나기 어렵기에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동료들과 작별을 고했다. 이별. 만남의 기간에 상관없이 어김없이 발생하는 이별. 만남의 기쁨으로 치우친 마음의 균형을 잡고자 이별의 아쉬움이 반대편에서 내리눌렀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1쿼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