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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Feb 20. 2023

05. 들끓는 열기, 축제 속으로!


한번 지나간 길은 돌아가지 않는, 그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만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 순례자들. 하지만 언제나 예외 는 있는 법이니, ‘팜플로나(Pamplona)’를 지나친지 10일 후. 나는 다시 팜플로나로 돌아왔다. 이유는 ‘산 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ín)’ 때문! 첫 방문 당시에는 몰랐다. 바로 이곳이 매년 질주하는 황소들 앞을 뛰어다니는 이해불가(소위 미친X)한 사람들의 영상과 함께 “올해 사상자는…”라는 뉴스 앵커의 침착하고도 소름끼치는 멘트의 진원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팜플로나를 지나친 이후, 순례자들 사이에서 팜플로나는 주요 얘기 소재였 는데 그때 산 페르민 축제가 불과 며칠 후면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뭐? 그 미친 짓(?)이 벌어지는 곳이 거기였다고?!” 난 고민에 빠졌다. 이것은 운명인가? 아니, 굳이 운명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다시 없을 기회를 마주한 지금 잡아야 하나? 그래! 내가 또 언제 스페인에 오겠어? 라는 의식의 흐름은 결국 나를 팜플로나로 회기하게 만들었다. 10일 동안 죽어라 걸었던 길이거늘, 버스를 타니 불과 몇 시간 만에 되돌아가는 상황에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문명의 이기. 고작 며칠 시골 마을 좀 걸어 다녔다고 원시인이 되다시피 한 내 모습에 살짝 현타가 왔다. 하하. 


산 페르민 축제에는 우연찮은 동행도 생겼는데 팜플로나로 돌아가려는 ‘부르고스(Burgos)’ 터미널에서 만난 ‘호’동생이었다. 축제에 갈지 말지 망설이던 차 나를 만나게 되었고, 이는 “축제에 가라!”는 하늘의 뜻이라며 내게 동행을 제안한 것. ‘아무래도 축제판에 혼자 멀뚱히 가는 것보다야 둘이 낫겠지?’하는 생각에 나 역시 흔쾌히 동행 제안을 수락했다. 이렇게 운명론자 호동생과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한 팜플로나는 이미 전야제의 열기로 불타고 있었다. 거리에는 하얀 옷과 빨간 스카프를 한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산 페르민 축제에 간다고 하니 손으로 뿔 모양을 만들며 “휘휘~ 우 우~”하며 요상한 의성어를 쏟아내던 아레카. 그런데 막상 오니 정말 모두가 그런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손에 와인이나 상그리아를 들고 취기에 살짝 몽롱해진 눈으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우리가 인파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자 모두들 먹이를 노리듯, 장난기 그득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고 결국 호동생은 술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산 페르민 축제의 드레스 코드는 하얀 옷에 빨간 스카프. 여기까지는 매우 평범하고 호응 가능한 범위지만 황소와 싸우는 투우사를 연상케 하는, 하얀 옷에 붉은 술을 뿌리는 게 또 하나의 전통이란다. 그리고 이미 만취하여 흥분 상태가 된 사람들 무리에 동양인 두 명이 순례자 차림으로 등장했으니, 나 같 아도 “요놈들 축제 맛 좀 봐라!”하며 환영 섞인 장난을 걸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술에 젖은, 그것도 냄새나는 과일주로 옷을 적신 채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난 ‘결코 너의 장난질을 용납하지 않겠어!’라는 안광을 쏘며 인파를 무사히 통과했다. 반면 도착하자마자 축제맛을 거하게 본 호동생은 붉게 물든 옷과 함께 울상이 되었다. 


일단 등에 달고 있는 커다란 짐덩이 처치를 위해 알베르게를 돌아다녔으나 이미 모든 곳이 만석이었다. 다행히 인심 좋은 한 오스피탈레로(알베르게 관리자)의 호의로 배낭은 창고에 맡겨 둘 수 있었다. 짐을 벗어 던지니 그제야 여유가 돌며 어서 빨리 그 미친 인파 속으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팜플로나는 10일 전과는 딴판이었다. 물론 첫 방문 때도 어느 정도 활기가 느껴지는 동네 였으나 그때는 은은한 숯불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도시 전체에 불을 지른 것처럼 화끈한 열기가 치솟고 있었다. 어딜 가나 들끓는 인파에 잔디밭을 비롯해 앉을 수 있는 장소마다 술을 마 시는 사람들로 빼곡했으며, 핫도그 하나를 사 먹으려 해도 쉽지 않았으니, “제 발 내 돈을 받아줘!”라고 소리치며 핫도그를 위한 처절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나름 눈에 띄는 동양인이었기에 쇄도하는 사진 요청과 관심에 즐거움은 배가 됐다. 콘서트장에서는 우릴 둘러싸고 흥겨운 춤판이 일기도 했는데, 우리의 웃통을 벗기려는 소녀무리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내가 만약 몸짱에 관심을 즐기는 화통한 성격이었다면 소녀들의 기대에 부응해 티셔츠를 벗어들고 머리 위로 흔들며 콘서트장의 분위기를 한층 더 후끈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야 동방예의지국의 유교보이였기에 필사적으로 탈의를 사수했다. 

그렇게 밤새 지속될 거 같던 텐션은 깊은 새벽이 돼서야 떨어졌는데 그야말 로 물리적 에너지 고갈로 인한 현상이었다. 이에 새벽 추위를 피해 몸 누일 곳을 찾았지만 팜플로나 도시 전역이 만석이었다. 결국 자리 잡은 ATM기 안. 우리 외에도 하얗게 타고 남은 껍데기만을 걸친 사람들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몸을 쉬게 한지도 잠시. 여명이 밝으며 또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눈치도 없는 해 녀석 같으니… 


밤새 길에 쌓이고 쌓인 쓰레기들이 치워지기 시작하고 소몰이 행사인 ‘엔시 에로(Encierro)’ 일명 불-러닝을 위한 울타리가 도시를 가로질러 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체력전. 멍하니 도시를 배회하던 우리는 사람들이 울타리 근처로 집결하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그렇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 좁은 울타리 사이로 지나치는 날뛰는 황소들과 더욱 날뛰어야만 살아남을 사람들의 질주를 보려면 자리를 사수해야 했다.  

건물 창가며 전봇대며 발 디딜 곳이 있는 곳엔 사람들이 올라서 있었고 모두들 이리저리 밀고 오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우리 앞의 스페인 소녀들은 한 무리의 쌈닭 패거리마냥 좌우로 싸움을 일으켰고 기어코 울타리 1열 자리를 지켜냈다. 2시간 정도를 그렇게 서서 버틴 끝에 나와 호동생은 울타리로부터 3~4열 정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사실 영화관처럼 뒷좌석을 배려하여 경사를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었기에 1열이 아니면 큰 의미가 없었다(어딜 가나  1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 

그리고 어느샌가 시작된 엔시에로. 앞쪽에서 사람들의 환호가 파도를 타고 내 앞까지 도달했고, 지친 몸을 일깨울 만큼 흥분이 엄습하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엔시에로 참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생각보다 긴박감이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는데, 황소들과는 꽤나 거리를 두고 시작하는 듯한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조깅 하듯 울타리 안을 설렁설렁 뛰어 지나쳤다. 

그렇게 뛰던 가슴도 점차 차분히 가라앉아가고 있었는데 얼마 후  아까와의 환호와는 다른 크기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황소 떼가 출몰한 것이었다. 앞의 소녀무리가 잔뜩 흥분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1열 사람들의 반응에 황소가 앞에 왔음을 알고 점프를 하고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살피며 황소를 구경하기 위해 몸을 놀렸다.  

하지만 장벽처럼 시야를 막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온전한 황소를 구경하기란 쉽지 않았고 황소로 추정되는 갈색, 흑색 덩어리 몇 개가 사람들 틈새로 슉슉  지나친 게 내 시야에 잡힌 모든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하룻밤+2시간 기다림의 결과였다. 순식간에 끝난 엔시에로에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난 “정말 이게 끝이야?”하는 허망함과 황소들의 벌름거리는 콧김과 꿈틀대는 근육을 마주하고자 했던 기대에 대한 미련에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살짝은 허무했던 메인 이벤트였지만 화끈했던 전야제와 축제의 열기에 내 몸은 쉬이 식지 않았고, 돌아온 순례길의 고요한 밤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룻 밤의 일탈. 이제는 다시 걸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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