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의 묘미는 무엇인가?
한 걸음씩 내딛는 걸음마다 길의 정기를 받고 변화하는 풍경을 즐기는 게 트레킹 본연의 맛이라면, 중간중간 배낭을 내려놓고 군것질을 하며 휴식의 안락함을 즐기는 건 묘미라 할 수 있다. 걷다가 일정 피로 게이지가 차면 엉덩이를 붙이기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장소 탐색이 끝나면 소풍이라도 나온 마냥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신발 양말 모두 벗고 과자와 같은 달달구리 간식들로 당충전을 한다.
그럴 때면 “캬! 이 맛에 트레킹 하지!”란 말이 절로 나오며, 걷느라 닳은 무릎 연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컴퓨터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집어먹는 과자와는 현격한 레벨 차이가 나는 이 ‘고생의 맛’이란!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마을은커녕 벤치 하나 없는 길이 수 킬로미터가 이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길 곳곳에 주저앉아 쉬는 사람들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보통은 신발을 신은 채 휴식을 취하지만 나는 5분을 쉬어도 제대로 쉬자는 마인드로 남의 나라 길바닥에서 숭한 맨발을 선보였다. 모두들 그런 내게 웃으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서로의 순례길을 응원하는 순례자들의 인사)!”를 외치며 지나쳤다. 나 역시 맨발로 순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줄 때면 ‘어째 저런 힘든 짓을 하고 있누…’ 잠시 남 일 바라보듯 현실을 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낯이 익은 한 아저씨가 나를 지나치려 했다. 난 그저 인사나 하고 지나가겠지 했는데 쾌활하게 웃으시며 “오! 마이 스페셜 보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묻기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급히 손짓을 하며 그대로 앉으라고 하는 아저씨. 난 급작스런 아저씨의 요청에 엉거 주춤한 자세를 취하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엄지까지 추켜올리곤 내 사진을 찍으셨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줄 알았는데 오로지 나만 찍어가는 아저씨. 아마 나를 순례길에서 만난 ‘동양의 자유로운 영혼’ 정도의 콘셉트로 지인들에게 소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맨발에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사진을 찍히니 약간은 민망했으나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 준 적이 있었을까? 나를 스페셜 보이라 부르며 환하게 웃어주고 사진까지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물론 아저씨에게 엄청난 깨달음이나 영감을 주지는 않은, 그저 순례길에서 만난 조금 특이한 친구 정도였겠지만 누군가에게 기억될만한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페셜하고 귀중한 사람으로 새겨진다면, 크진 않지만 남들에게 소소한 기쁨과 영감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 어린 희망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