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은 당연하게도, 반전 따윈 없이, 무지하게 힘들다. 만약 “가겠다!” 마음먹었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괜히 겁주려는 의도가 아니다. 힘들 뿐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순례자는 그야말로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불문이며, 본인의 체력에 맞춰 힘들면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길이다. 그냥 알고 맞아야 덜 아프니까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800km의 거리를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억 소리 나는 고됨이 예상돼겠지만 이에 한 가지 더! 스페인의 태양은 예상치 못했던 시련이자,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보다 더 큰 힘으로 순례자를 무릎 꿇리는 존재였다(물론 내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6, 7월과 같은 여름 한정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계절은 또 다른 변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순례자의 하루는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다. 여명의 기운조차 흐린 새벽녘. 길 위의 하늘거리는 나무와 바람결에 소리를 내는 밀밭 사이를 걸을 때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곧 길을 따라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뒤를 돌아보면 하늘 한쪽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붉은빛을 머금은 구름은 새벽 기운과 융화돼 신비로운 색을 만들어내고, 고개 너머로 반쯤 얼굴을 내민 태양은 막 잠에서 깨어난 아기처럼 순하고 무해하며 사랑스럽다. 하지만 따스한 평화로움도 잠시. 점점 높이 솟아오르는 태양에 나는 겁에 질리기 시작한다. 점점 높이, 점점 뜨겁게 변하는 태양은 서쪽의 어둠까지 모두 몰아내고, 하루살이의 생명력마냥 온갖 힘을 짜내 순례자를 폭격한다. 동에서 서로 향하는 순례길의 진로는 마치 떠오르는 해를 피해 도망가는 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기세가 무섭다.
그렇다. 순례자의 하루가 해도 뜨기 전,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첫째, 하루의 코스를 빨리 마치고 동네 구경 및 휴식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로 해가 아직 잠에서 덜 깼을 때 조금이 라도 걸어두려는 이유다. 해뜨기 전 얼마나 걸었느냐가 그날 머물 마을에서 놀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하는 핵심 포인트랄까? 밀밭이 드넓게 펼쳐진 길을 걸을 때면 나도 저 노란 밀처럼 익어버릴 것만 같다. 길을 걷다 힘겹게, 힘겹게 길 옆 풀숲으로 몸을 옮기는 달팽이를 볼 때면, 나도 저렇게 작아져 노란 꽃 아래 태양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싶단 생각이 간절하다. 세상 살면서 달팽이가 되고 싶단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스페인 태양의 위력. 스페인의 뜨거운 햇살은 나의 가무잡잡하게 그슬린 얼굴에 남아 아마도 평생을 함께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