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길
아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이 ‘아는 형’이란 존재는 인생을 이끌어 주는 조력자이자, 웃음을 나누는 친구이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남자들에게 아는 형의 존재를 없애면 인생은 참으로 순탄하겠지만, 재미 또한 잃을 것이다.
당시 부산에 있던 내게 서울에서 장사를 해보자는 ‘아는 형’의 제안이 왔다. 난 장사를 해본 적도 없거니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던 터라 거절했다. 하지만 아는 형의 구애는 몇 개월이 지나도록 계속됐고, 그동안 나의 상황은 변했다.
일단 다니던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아는 형이 어디서 굿판이라도 벌였던 걸까? 부산에 채워졌던 나의 모든 족쇄가 끊어진 셈이다. 이후 다시 한번 형의 제안이 왔을 때 난 비로소 승낙했다. 하지만 형의 삼고초려는 대상이 잘못됐다. 형은 제갈량이 아닌 한량과 다름없는 나를 얻었기 때문이다. 미리 스포를 하자면 우리의 장사는 거하게 망했다.
하지만 뭐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사장님’이란 단어가 내뿜는 도파민에 지배당해 곧 떼부자가 될 거란 근거 없는 희망이 샘솟는다.
상경 첫날 아는 형의 차를 타고 서울의 밤거리를 달렸다. 창밖으로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멍하니 바라보니, 새삼 ‘내가 정말 서울에 왔구나’하는 자각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불안감으로 온몸에 긴장감이 가득 차올랐다.
우리가 차린 가게는 바로 족발집이었다. 사실 난 그전까지 족발을 손에 꼽을 정도로 먹어본 상태였으며 연성 가능한 음식이라곤 라면과 계란후라이가 전부인 ‘요알못(요리 알못)’이었다. 게다가 ‘커피’화에서 언급했듯 나의 손은 빛나는 똥과도 진배없었으니. 그런 내가 처음으로 음식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직접 요리까지 한 것이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라면과 족발이라니. 덧셈 뺄셈 배우다가 진도가 갑자기 미적분으로 점프한 셈이랄까?
난 분명 아는 형에게 나의 미천한 능력을 여실 없이 이실직고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음식은 레시피 보고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된다는, 눈과 손 그리고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지능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말에 “도전!”을 외친 것이었다.
매장 위치 선정부터 가게 인테리어, 교육 등의 절차를 마친 후 드디어 장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스포대로 우리는 망했다. 거하게. 하하하. 뭐 원인을 꼽자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의 무능이 첫 번째이며, 매장의 위치, 가격과 메뉴 전략 등 아주 그냥 입구부터 주방 안쪽까지 싹 다 문제였다.
도파민에 절여졌던 나의 뇌는 냉혹한 현실에 후드려 맞다 보니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거의 무일푼으로 상경했던 나는 여전히 무일푼이었다. 사람이 무일푼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당연히 없다. 현대인의 기본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휴대폰 요금마저 연체되는 극악의 생활고가 시작됐고, 결국 투잡을 뛰게 되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장 근처 콜센터에서 일을 했다. 내가 콜센터를 선택한 이유는 칼 같은 퇴근 시간이 엄수되는 직종임과 동시에 족발집에서 오토바이로 10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차 퇴근 후 바로 족발집으로 출근했고, 새벽 1시에 두 번째 퇴근을 했다.
그 시절 난 참 열심히 살았다. 비좁은 반지하 원룸에서 친구와 함께 둘이 지내며, 주간에는 전화를 받고, 밤에는 족발을 썰던 나. 한량과도 같았고, 여전히 한량 생활을 하는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가난했던 시절.
언젠가 친구가 족발집에 찾아왔다. 그날도 역시 새벽 1시에 일을 마치고야 친구와 술 한잔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늦게까지 술을 진탕 마셨다. 나는 쪽잠을 자고 나서 이른 시간 매장에 나갔고, 친구는 내 자취방에서 느지막이 일어났다. 숙취로 해롱이는 몸을 겨우 가누며 매장으로 찾아온 친구는 내 모습에 경악했다.
주방을 가득 채울 만한 커다란 고무 대야에 한가득 쌓인 족발. 그리고 대야 옆에 쪼그려 앉아 족발 털을 미는 내 모습 때문이다. 친구는 전날, 아니 당일 새벽에 마신 술 때문에 몸도 가누기도 힘든데 나는 아침 일찍부터 면도기로 족발 털을 밀고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눈이 충혈돼 있고 머리도 어질어질 했으나 이것이 장사의 길이었다. 그 친구는 아직도 그날의 장면을 회상하며 날 애잔하게 바라보곤 한다.
그렇게 장사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나는 빤스런을 했다. 난 “회사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라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니 두 손 꼭 붙들고 간절하게 사정하고 싶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쓸데없는 생각 말고 조신하게 다니던 회사나 잘 다니라고.
그렇게 족발은 내게 큰 엿을 날린 음식이지만, 난 족발을 정말 좋아한다. 왜냐면 이제는 남이 해준 족발만 먹으니 말이다. 음식은 역시 남이 해주는 게 제일 맛있는 법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