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퍼스타 Oct 24. 2024

커피

으른의 세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땃한 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시던 선조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어느새 한겨울에도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마시는 민족이 되었다. 이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대한민국의 국민 음료가 됨과 동시에 조금만 지나면 전통 음료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커피의 어마어마한 대중화가 일었지만, 여전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둘로 나뉜다. 커피 맛을 아는 사람과 나처럼 모르는 사람. 내가 처음 커피를 제대로 접한 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다. 당시에 난 커피숍이란 곳엔 가본 적도 없었으며, 커피라곤 고작 캔커피와 자판기 커피 몇 번 마셔본 게 전부인 커피 청정인이었다.     


당시에 커피숍은 커플 혹은 여자들끼리 가는 곳이란 인식이 있었다. 여자 만날 일 없던 나는 당연히도 커피숍에 갈 일이 없었다(잠깐 왜 눈물이...). 지금에야 갖가지 프랜차이즈 매장을 필두로 지천에 커피숍이 널렸으며, 남녀노소 할 거 없이 가볍게 들러서 음료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 됐지만 말이다. 그때 당시 남자끼리 커피숍에 간다는 발상은 참으로 남사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런 내가 커피숍에 처음 가게 된 건 아르바이트 때문이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 관련 웹사이트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나 도대체 몇 살이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위해선 이력서를 여러 장 준비해 번화가를 돌며 가게 문에 붙어있는 구인 공고 프린트물을 훑고 다녔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하나가 바로 커피숍이었다.     


사실 커피숍에 면접을 보러 들어가면서도 ‘남자인 날 뽑겠어?’란 생각이 들었지만, 얼떨결에 취업 성공! 그렇게 난 처음으로 커피의 세계와 마주했다.     

처음 접한 커피숍은 어땠을 거 같나? 충격적이었다. 꽤나 널찍했던, 30~40평 정도의 공간에 여자들이 들어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모여 있는 것도(남고-공대생) 생소했거니와, 이렇게 많은 여성 흡연자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스무 살 ‘갓어른’인 내게 “으른의 세계는 이런 곳이란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커피와 담배 둘 다 못하는 내 앞에서 저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 독하디 독한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에겐 범접 못 할 아우라가 있었다.     


충격적인 첫인상과 함께 일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황금 똥손의 소유자인 날 단박에 알아본 사장님. 그렇게 난 서빙 전담이 되었고, 커피 무식자였던 난 겨우겨우 카페라떼와 카페모카, 헤이즐넛의 차이를 암기식으로 주입했다. 그렇게 겨우 커피의 키읔을 익혔을 무렵 뜻하지 않은 손님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어떤 커피가 맛있어요?”

귀여운 여자 손님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하지만 내 답은 퍽 귀엽지 못했다.

“커피는 다 맛없지 않나요?”

여자 손님은 당황하며 아무거나 시켰고 난 주문접수라는 임무를 완수하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장님의 머리에선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커피는 다 맛없지 않나요??????!!!!!”

나도 그때야 깨달았다. 이건 정말이지 커피숍 직원이 할 말은 아니었단 걸. 상도덕적으로다가 말이다. 그 이후 내게 하나 더 주입된 커피 상식. 맛있는 커피 = 카페모카. 마치 계속해서 학습하며 진화하는 인간형 AI의 모습이지 않은가?     


하여튼 그렇게 커피 무식자였던 내가 지금은 부드러운 카페라떼를 좋아하며, 종종 깔끔하게 입가심을 하고 싶을 때는 아메리카노를, 그리고 달달한 게 땡길 때는 카페모카를 찾는 정도까지는 발전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할 때면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때론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뜨거운 원두커피를 마시는, 포스 넘치던 누님들로 가득했던 그날의 커피숍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전 09화 아보카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