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지 못한 꽃
주위에서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그에게 집중해주세요
따스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그의 말을 들어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그 사람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딸깍. 딸깍.
여느 날과 같은 하루.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아 이런저런 기삿거리를 읽으며 월급 루팡을 하고 있는데 메신저가 날아들었다. 딸깍. 별생각 없이 메신저 창을 연 나는 순간 입에 커다란 마개를 끼워 넣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K 하늘나라로 갔대...”
사람은 충격적인, 부정적인 소식을 접했을 때 내용을 인지하는데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처음은 현실 부정. 이는 갑작스러운 충격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자기방어적 기제가 작용함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성과 의지에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이 메시지의 내용을 부정했다.
거짓말. 그렇게 내게 날아든, 시뻘겋게 달궈진 쇠구슬은 부정의 찬물에 담가졌다. 그렇게 달궈진 쇠구슬의 열기가 어느 정도 식었다 싶었을 때 비로소 다시금 쇠구슬을 집어 들고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비로소 메시지의 내용이 뭘 의미하는지 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까지 버린 건 아니었다. 아직 완전한 끝은 아닐 거라는, 단지 위독한 상태일 거라는 현실 왜곡의 잔물결이 계속해서 나를 흔들었다.
난 메신저에서 다른 의미를 찾으려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문장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기엔 너무 짧았고, 명료했다. 부정의 발버둥을 끝내고 결국 진실을 수긍했을 때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폭풍처럼 차오르는 눈물과 다르게 입은 갈라진 논처럼 바짝 말라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상대의 메시지를 읽어 사라진 1을, 그리고 이 너머에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이 생각났다. 하지만 여전히 뭐라고 할지 몰랐고, 그대로 그렇게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상대도 이 부고를 접했을 때 나와 마찬가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도, 병도 아닌 죽음. 장례식도 없는 마지막이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리 쏟아내도 눈물은 비워지지 않았다. 여느 사람들처럼 사회활동을 끝내고 홀로 텅 빈 집에 있으면 K 생각이 났다. 더는 K를 볼 수 없다는 슬픔에,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K가 불쌍해서, 그리고 죄책감에... 나의 차가움에 스스로를 경멸했다. 물론 내가 K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나 혼자만의 죄책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K를 살릴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K를 동호회에서 만났다. 둘 다 조용한 타입이었던 터라 우리는 만나면 수줍게 인사나 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우리의 수줍은 인사는 얇은 면사포처럼 쌓여갔고, 어느새 몇 년이 흐르자 그 무게는 꽤 무거워졌다.
내게 K는 비록 동호회가 아닌 밖에서 따로 밥 한번 먹어보지 않은 사이었지만, 오랜 시간만이 빚을 수 있는 자연의 풍경처럼 애틋하고 정이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동호회 모임이 있던 날. K는 슬그머니 내 옆에 와 섰다.
“요즘 좀 힘드네요...”
옆에 선 K가 문득 내게 말을 건넸다. 난 순간 메신저를 받았을 때와 같이 굳어버렸다. 물론 강도는 훨씬 약했지만, 갑작스런 K의 발언은 날 굳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하지? 평생을 좁디 좁은 우물 안 인간관계에서 지내온 내게 K와의 거리는 참으로 애매했고, 난 이런 관계의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학습이 안 된 인간이었다.
나름 최적의 반응을 찾으려 애쓰는 사이 침묵은 거대한 바위처럼 부풀어 나를 옥죄어왔고, 난 결국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것이 내가 한 전부였다. K는 다음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난 K에게 왜 나오지 않았냐고 메시지를 썼다. 하지만 이내 뭔가 나답지 않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메시지를 지웠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내가 그날 보내지 않은 메시지에 인생 최악의 답장이 돌아온 것이다. 난 지방에 있는 K의 봉안당을 홀로 찾았다. 나에게 K의 부고 소식을 알린 지인이 같이 가자고 했으나 핑계를 대고 다음에 따로 가겠다고 했다. 아직도 울렁거리는 감정에 눈물이 터질 것임이 자명했기에, 그런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자락에 자리한 봉안당은 포근하고 평화로웠다. 친구와 함께 돗자리를 펴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드러누워 낮잠에 들 것만 같은 곳. 창을 통해 들이치는 5월의 햇살은 따사롭고도 포근하게 안치된 수많은 영혼을 보듬고 있었다. 그렇게 한칸 한칸 번호를 짚으며 K를 찾았다.
유골함에 새겨진 K의 이름을 보자 이미 수긍한 좌절어린 결과를 다시 한번 되뇌게 되었다. 사진 한 장 없는 K의 유골함. 그래. K를 보고 싶은 것도 나의 욕심이었다. 아니 봉안당을 찾은 것 자체가 나의 욕심이었는지도. 산 자의 감정을 위한 추모 행위. K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다는 욕심. 죄책감에 대한 용서를 위한 추모. K의 이름 옆에 새겨진 연도는 다른 이들보다 한참이나 짧았다. 너무나도 짧았던 K의 삶.
나는 봉안당을 나와 뒤뜰의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눈물이 떨어졌다. 내 숙인 고개로 인해 그늘진 땅에 비가 내리듯 눈물이 쏟아졌다. 속에서 울리는 천둥과 번개는 앙다문 입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나의 몸 곳곳을, 장기를 할퀴고 베고 찢어놨다. 그 고통에 나의 눈에선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이 와중에도 남들 앞에선 울 용기가 없었다. 다른 이들처럼 유골함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목 놓아 부르지 못했다. 나는 이 와중에도 창피함을, 체면을 차리며 아무도 없는 그늘로 숨어들고 나서야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우리는 때로 너무 가까운 이에게는 깊은 어둠을 내보이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론 약간의 거리가 있거나 익명의 존재에게 하소연하듯 모든 걸 내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밑바닥에 깔린 우울함을 너무 가까운 이에게 보이는 건 어느 정도의 모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쎄. 정확히는 모르지만, K는 나 이외 다른 이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누가 됐든 K를 잡아줬더라면. 그리고 내 차례가 왔을 때 망설이지 말고 잡았더라면.
누군가를 위로할 만한 단어도 알지 못하는 무지 탓에, 따스함과 걱정의 눈빛이라곤 보내본 적 없는 살갑지 못한 성격 탓에, ‘별일 아니겠지’하는 무심한 탓에. 난 사람을 잃었다.
K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동호회 활동이 끝나고 다 같이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할 때였다. K는 뜬금없이 아보카도를 키우고 싶다 했다. 도대체 아보카도를 집에서 키우는 발상은 어떻게 하는 걸까? 그 생각의 원천과 경로가 궁금했다. 분명 평범치 않은 희망 사항이었지만, 순수하면서도 엉뚱한 매력이 있던 K였기에 ‘K답다’고 생각했다.
K가 떠나고 난 아보카도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찾아봤다. 그냥 아보카도 하나 사서 썰어 먹은 다음에 화분에 씨앗을 던져두면 쭉쭉 자라나 열매를 맺을 줄 알았건만, 예상보다 복잡스러웠고, 키우는데 많은 관심을 요했다. 도대체 이런걸 어떻게 키우려고 했던 건지. 웃음이 나면서도 먹먹해지는 마음.
만약... 정말 이뤄졌으면 하는 만약에.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최대한의 따스함으로 K를 위로할 것이다.
나는 따스한 햇살 아래서 건강히 자란 아보카도 열매를 맛보는 K를 상상한다.
부디 그곳에서는 따스하게 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