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했듯 리키안 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와 같은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따로 없을뿐더러 일반 가정집을 제외하고는 숙박 시설과 식당도 없는 마을도 꽤나 지나쳐야 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먹고 자는 문제에서 언제나 불안감을 느끼며 길을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잠자리, 숙소였다.
아직 날이 쨍쨍함에도 점심때가 지나고 해의 기운이 조금만 약해 져도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라는 걱정에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숙소라곤 알베르게 일변도였던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달리 리키안 웨이에서는 다양한 숙소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당연 정식 숙박업소이다. 항상 가장 저렴한 방을 골라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깔끔하게 세탁된 침구류와 맘 놓고 씻을 수 있는 욕실만으로 만족스러운 잠자리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실 숙소라고 할 수도 없는 노숙이다.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지 정확한 계산도 안 됐거니와 도중에 자주 길을 잃어 시간이 지체되거나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처럼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저기까지와 같은 정확한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게다가 도착한 마을에 꼭 숙박업소가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기에 항상 노숙을 염두에 두고 길을 걸었다. 조금은 무모하고도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행 당시 튀르키예의 따뜻한 날씨와 해안을 따라 걷는 길 덕이었다.
8월의 튀르키예 날씨는 노숙으로 인해 입이 돌아갈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으며, 해변에는 간단한 세면시설과 함께 썬베드나 벤치 등 내 몸 하나 정도는 뉘일 시설이 있었다. “아니! 해변이 있는데 숙박 시설이 없단 말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모든 해변이 관광지처럼 개발되기엔 튀르키예의 해변은 광활했다. 그리고 때로는 숙박 시설이 있는 해변에서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숙박비를 아껴 고기를 먹는 가난한 여행자 입장에서 자발적 노숙을 택하기도 했다.
해변에서의 하룻밤. 얼핏 낭만 가득한 하룻밤을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실로는 해가 진 이후 길고도 긴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잠이 올 리 없는 이른 저녁부터 어둠에 홀로 남겨진다. 밤새 유튜브를 볼 수도 없거니와 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나 혼자만 어둠의 유리병에 갇힌 시간. 그 나마 변칙적인 파도 소리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얼마간 어둠에 물들면 낮에 걸음한 피로가 몸 전 체에 퍼지며 잠이 오기 시작한다. 파도 소리도 희미해지고 의식이 끊어지려는 찰나…… “위잉~”하는 모깃소리! 엄하게 뺨 한 대를 맞으며(동시에 때리며) 깨어난다. ‘이런 제길…….’ 제발 재워 달라 사정하는 나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피를 탐내며 탐욕스럽게 얼쩡거리는 모기 녀석. 그렇게 밤새 깊이 잠들지 못한 채 설잠을 자다 보면 어느새 수면 위로 해가 떠오른다. 아……. 그래도 꽤나 쌀쌀한 새벽 기운에 침낭을 꼭 끌어안고 바라보는 일출이란. 수면 위로 층층이 색이지는 하늘. 그래, 이것만은 해변 노숙에서 인정 하는 부분이다.
해변 노숙이 입문자 레벨이라면 산 노숙은 레벨이 좀 더 올라간다. 오늘 하루가 꼭 해변에서 끝나는 건 아닌지라 산에 있는 마을에서 노숙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동네의 정자와 같은 곳에서 몸을 뉘이곤 했다. 그런데 아까 한 말을 번복하자면 입이 돌아갈 염려가 없는 여름의 튀르키예의 날씨는 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산의 밤은 매우, 베리베리 춥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해가 지면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아침이 되면 밤새 스며든 한기에 몸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다. 그러면 달달 떨면서 햇빛이 드는 곳으로 이동해 한 동안 멍하니 몸을 녹였다. 산길 한가운데 침낭을 몸에 두르 고 해를 쬐는 불쌍한 청년이여. 누가 보면 동네에 하나씩 있는 바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산에서의 노숙이 해변 노숙보다 레벨이 높은 이유는 추위도 추위지만 바로 무섭기 때문이다. 오로지 달빛만 존재하는 어두운 밤이 되면 산에서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동물 울음소리와 뭔가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날 때면 고개를 들어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주변 을 살폈다. 그렇게 반복되는 경계태세에 심신은 지치고 다시 한번 나의 여리고 작디작은 간덩이를 느낀다(본 투 비 겁쟁이). 하지만 산 노숙에도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수없이 찍혀있는 밤하늘의 별과 별똥별이다. 별똥별은 특별한 날에만 발생해 뉴스에서 그렇게 유성우 쇼니 뭐니 하며 요란을 떠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특별할 거 없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자연현상이었단 걸 튀르키예의 산에서 알게 되었다. 일출과 별똥별은 노숙에 대한 자연의 보상이었다.
마지막으로 현지인 가정집에서의 숙박. 이는 정말 리키안 웨이에서 최고의 숙소였다. 숙박 시설이 없는 조그마한 마을에 당도했을 때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을 묻거나, 숙소나 식당, 마트의 위치를 묻기 위해 말을 붙인다. 그리고 슬쩍 “나 자고 가도 돼?”하고 묻는다. 그러면 흔쾌히 수락하며 빈방 을 내주거나, 정자를 내준다. 그렇게 정식으로 고객이자 손님, 친구가 되면 주인분은 과일과 차를 내오며 수다 시간을 갖는다. 이후 저녁과 다음 날 아침까지 튀르키예 가정식으로 차려진 식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인정 많은 튀르키예 가족은 길 가다가 먹으라며 치즈, 빵, 삶은 달걀에 찐 감자 등 먹거리까지 살뜰히 챙겨주니, 저렴한 가격에 다과와 세끼 식사까지 해결되는, 그야말로 가성비 폭발의 숙소! 이런 혜택도 혜택인데 역시나 가장 좋은 점은 튀르키예 문화를 체험하고 쓸쓸히 홀로 걷던 길에 대화할 사람을 만났다는 점이었다. 외지인을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다가와 주는 튀르키예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경험도 가능했으며, 리키안 웨이의 하루하루가 더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이런 다양한 숙소 덕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