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리키안 웨이 vs 산티아고 순례길

by 서퍼스타
KakaoTalk_20230130_204349677_01.jpg
KakaoTalk_20230130_204349677_02.jpg
KakaoTalk_20230130_204339777.jpg
KakaoTalk_20230130_204349677.jpg


리키안 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당연하게도 많은 부분에서 달랐는데, 길이 놓여있는 나라와 역사, 배경, 의미 등 문화적으로의 ‘길’은 차치하고, 오로지 자연 상태로써의 ‘길’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선 가장 큰 차이라 하면 리키안 웨이는 해안을 따라 연결된 길인 만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마지막 0km 지점 인 ‘피스테라(Fisterra)’에서만 겨우 볼 수 있었던 바다를 무한정 질리도록 접한다는 점이다.


리키안 웨이는 시작부터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트레킹을 위해 방문한 ‘페티예(Fethiye)’의 첫 마을, 그리고 본격적인 출발선이라 할 수 있는 ‘욀뤼데니즈(Ölüdeniz)’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 해안 길의 장점은 역시나 상쾌한 바닷바람과 뻥 뚫린, 시원한 시야일 것이다. 걷다가 힘이 들어 주저앉아 바게트를 뜯으면 오션뷰 레스토랑이 된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오션뷰 프리미엄이 저절로 붙으니 힐링 그 자체이다. 게다가 그저 눈으로만 즐기는 감상용이 아닌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체험형이라는 점!


길을 걷다 보면 정식 해수욕장이 아닌, 군데군데 아무도 없는 자그마한 해안을 종종 만난다. 그러면 배낭을 내려놓고 태양 볕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자 팬티 바람으로 바다로 뛰어든다. 그렇게 나만의 프라이빗 해변을 지닌 기분을 만끽하다 보면 실로 이만한 가성비를 지닌 여행이 어디 있을까 싶다. 때로는 그렇게 수영을 하고 있노라면 해안을 투어하는 유람선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배에 탄 승객이 하나둘 나를 구경하기 시작했고,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바다에 둥둥 떠서 그들의 시선과 관심을 받을 때면 기분이 살짝 묘했는데, 혼자만의 유희가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그들보다 조금 더 진하게 튀르키예를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 도 들었다.


하지만 인생은 이처럼 빼어난 보상을 공짜로 하지 않는다. 멋진 경치는 곧 높은 위치, 이는 곧 험한 경사의 산길로 귀결됐다. 게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많은 이가 찾는 길이 아 니다 보니 길은 그야말로 야생에 가까운 상태였다. 울퉁불퉁한 자갈과 산의 비탈면을 따라 경사진 길은 자칫하면 발목을 돌려버릴 정도였기에 굳세지만 유연하게, 스틱을 적절히 활용해 가며 걸어야만 했다.


또한 바다가 보이지 않는 깊은 산으로 향하는 길도 많았는데, 이럴 때면 오션뷰는 포기하게 됐지만 길은 좀 부드러워졌다. 바다와 가까운 길일수록 돌이 많이 드러나 있었고 산속으로 갈수록 흙길이었다. 인생사 공짜는 없으니, 자연이란 참으로 정직한 녀석이다. 해안을 벗어난 산속에서는 딱 한 번 계곡에서 수영을 했는데, 이때는 팬티까지 벗어던진 채 한 마리의 야생 원숭이처럼 완전한 자연인이 되었다. 바닷물과는 다른 짜릿한 시원함이 리키안 웨이에서 했던 수많은 수영 중 별미였달까?


이렇게 해안을 끼고 걷는 지리적 요건에 의해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다른 점이 많았는데 이 외에도 한 가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최악의 난적으로 뽑았던 태양. 이 태양 볕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이어 리키안 웨이에서도 나를 끈질기고도 위협적으로 괴롭히는 존재였는데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루트로 인해 더욱 진화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안면에 정통으로 해를 받으며 나아가는 길은 나에게 남은 인생에 더 이상 ‘하얗고 고운 피부’는 포기하게끔 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런 강렬한 햇빛을 막고자 구매한 챙 넓은 모자로 인해 여럿 게이들을 설레게 했었다. 챙이 큰 것 을 모자 구매의 최우선이자 유일한 기준으로 삼자, 소위 여 자들의 피크닉 씬에 등장하는 챙이 넓고 꽃이 그려진, 하늘 거리는 밀짚모자와 같은 제품을 고르게 됐다. 그리고 이는 여럿 게이들로부터 대시 아닌 대시를 받게 했는데, 나중에 나를 게이로 착각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내 모자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제야 왜 그리 나에게 게이들이 들러붙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여튼 길의 난이도로만 보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게임의 체험판이라면, 리키안 웨이는 본게임이었다. 하지만 두 길 모두 서로가 갖지 못한 장점을 보유한 각자의 매력을 지 닌 멋진 트레킹 코스임은 분명하다. 만약 두 길 중 하나를 추 천하라고 한다면, 좀 더 안정적인 트레킹과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바다를 좋아하고 좀 더 자연적이고 힘든 길에 도전하고 싶다면 리키안 웨이를 추천한다. 그래서 둘 중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글쎄?

이전 02화01. 다시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