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그날의 선선한 바람
아직도 그보다 시원한 바람은 느끼지 못해봤네요
나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바람
마지막이 아니어서 다행인 그날의 바람
요즘 같은 폭염에 문득 그리운 그날의 선선함...
죽고 싶다... 자살 시도를 해 본 적 있는가?
때는 바야흐로 알 거 다 알만한 나이인 초딩 5년 차.
“초딩이 알긴 뭘 알아?” 할 수도 있지만, 애들이 미적분이나 연말정산, 대출서류를 뗄 줄 몰라서 그렇지, 철수가 영희를 좋아하는지, 그런데 영희는 동수를 좋아하고, 담임선생님은 엄마가 학교에 오는 날에만 유독 상냥하게 웃는 것도, 옆집 아줌마가 맞고 사는지, 우리 아빠의 월급이 쥐꼬리라는 것도 모두 알 나이다.
무려 12세.
난 생애 첫 자살을 결심했다.
(결심은 좀 거창한 느낌이고... 시도? 다짐?)
여튼 때는... 글쎄...
분명 기억 속 내 옷차림은 반팔차림인데 그때 창가에서 맞이한 바람이 꽤나 선선했던 기억에 한여름이었는지, 슬슬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초가을 무렵이었는지...
어쨌든 사건은 나의 미숙한 절제력에서 비롯됐다.
그 당시 난 ‘집->학교->학원->놀이터->집’의 보편적인 초딩의 동선에 따라 생활하는, 그저 엄마 말 잘 듣는 평범한 초딩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알 거 다 알던 나는 저 지긋한 동선에서 벗어나 더 신나고 자극적인 쾌락을 갈망하고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나이었다.
푸른 하늘에 나뭇잎은 살랑거리고 길고양이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최대한 느리게 걷기를 연마하듯 느릿느릿 걸어가고, 온화한 표정의 어르신들은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지루~~한 동네 골목길. 하지만 문 하나만 열고 들어가면 세상은 뒤집힌다.
그곳은 바로 오.락.실.
문 하나 열고 들어가면 순식간에 내핵까지 끌려 들어간 듯한 시커먼 어둠의 공간에 갇힌다. 사방팔방 터지는 총소리와 비명, 자동차 엔진 소리가 정신없이 내 귀를 두드리며 몸을 짓누르는 곳. 그리고 눈이 아리게 번쩍이는 모니터 앞에서도 한 번의 눈 깜빡임 없이 뭔가에 홀린 듯 사정없이 버튼을 두드리는 아이들.
이곳은 남자아이들의 판타지 월드! 환락과 몽환의 세계!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용을 무찌르고, 세계를 정복하고, 사나이 대 사나이의 승부를 가르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유후~!)
이 자체만으로 오락실은 ‘전율의 공간’ 그 자체였지만 그 짜릿함의 결정적 한 방울은 바로 엄마가 허락하지 않은 ‘금단의 장소’라는 이유였다.
물론 친구 중엔 엄마의 제재가 없는 듯 오락실을 꽤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친구들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너 오락실 가는 거 들켜도 혼 안 나?”하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왜 있지 않은가. 여유로운 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내겐 없었던 그것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만 참 요상한 구석에서 징하게 깐깐하게 굴었다(음... 엄하셨다고 정정하자). 그런 엄마 아래서 오락실 출입은 당연 꿈에도 못 꿀 일. 그래서 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에서 학원 가는 길. 다시 집으로 오는 길. 잠깐씩 시간을 분할 해가며 조심스레 오락실을 들락거렸다(어린 녀석이 참으로 영특했어. 허허허).
하지만 모든 인간, 심지어 신마저 한다는 ‘실수.’ 그렇게 조심스레 오락실을 다니던 하루. 어린 나의 절제력 제어기가 기어코 고장 나고 말았다. 그날따라 게임이 재밌었다(사실 매일이 그랬지...). “한 판만 더. 한 판만 더.”(사실 매일이 이랬다) “아... 진짜 가야 하는데...” 그렇다. 원래는 이 타이밍에는 정신을 차리고 오락실을 나섰다. 그런데 이날은 나를 붙잡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툭.
이것이 막장인가...
그렇게 내 비밀의 시간은 엄마의 레이더에 포착될 만큼 길어지게 되었고 학원 시간까지 늦게 돼 버렸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의 추궁은 시작됐고, 나의 문란한(?) 사생활이 드러났다. 그래. 여기까진 그냥 엄마한테 혼나고 풀죽은 아이로서 일 년에 수십 번 반복되는 흔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오락실에 다닌다는 얘기를 시작했다.
“글쎄 이놈이 오락실에 갔다 왔지 뭐야. 학원도 빼먹고.”
하악!!
그 순간 난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지금이야 “그깟 오락실이 뭐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의 내 세계에서의 오락실은 ‘문란 지수’ 최대치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할 거 같으면 소위 퇴폐시설에 다녀온 것을 들키고 남들에게 떠벌려지는 것과 같은 수위랄까?
그렇게 엄마의 통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난 좌절했다. 나름 지금까지의 착한 범생이 이미지와 반장, 회장 등 수차례 임원을 보낸 내 업적과 명성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어떻게 가지?’ ‘동네 어른들은 무슨 낯짝으로 보고, 인사를 드린단 말인가?’ ‘내가... 이 착실한 내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꼴 같지도 않은... 정말 꼴 같지도 않아서 글을 쓰면서도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그때는 한없이 진지했다.
난 충격에 휩싸인 채 내방 창문 앞에 놓인 책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당시 우리 집은 4층이었고 문을 열자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래. 그 바람은 참 선선하고 기분 좋았다.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그날의 바람. 그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죽자.
향년 12세(만 10세). 자살을 결심하고 그렇게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때 동생이 “뭐해?”라며 날아가는 날파리를 쳐내는 만큼의 대수로움으로 날 흘끗거리고 사라졌다. 엄마는 주제를 바꿔 계속해서 아주머니와 통화를 하며 웃고 있었다. 이 세상 심각한 건 나 혼자뿐이었다. 제길... 그렇게 난 수줍게 끙끙거리며 다시 책상에서 내려와 앉았다.
이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 시도는 다행히 미수로 마쳤다. 이날의 경험은 내게 두 가지 깨달음을 줬다. 아이들은 섬세한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애들이 뭘 알겠어?’란 생각으로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참... 소심 찌질이 라는 것. 끙... 진실은 언제나 불편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