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소유 vs 무소유 당신의 선택은? (feat. 김만중「구운몽」)
일장춘몽(一場春夢).
봄날의 한바탕 꿈을 뜻하는 이는 부귀영화와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사자성어이다. 또한, 이 일장춘몽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야기가 바로 <구운몽>이다. ‘성진’이라는 승려가 ‘양소유’라는 인간으로 환생해 뛰어난 재능으로 높은 벼슬에 오르고, 아리따운 8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며 부귀영화를 누리나, 이 모든 게 한바탕의 꿈이었으며 다시 승려로 복귀한 성진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필시 뛰어난 재능과 넘치는 부, 아리따운 이성, 화기애애한 행복한 가정으로 인생을 채움에도 이 모든 게 그저 한낱 꿈과 같은 덧없음을 주제로 담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성진에 대한 억까와 양소유의 미친 성욕, 잘나고 예쁜 여덟 여자들의 친교질로 점철된 내용이라 생각된다.
성진은 스승인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갔다가 술 한 잔을 받아먹게 된다. 성진은 자신은 승려이며 술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완강한 거부에도, 용왕은 “용궁의 술은 인간 세상의 것과 다르며 술이라고도 할 수 없다”라며, 신입사원에게 억지로 술을 강요하는 개꼰대 부장처럼 기어코 성진에게 술을 먹인다.
석 잔을 스트레이트로 때려 마시고 연화봉으로 돌아온 성진은 술기운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용왕이란 놈이 용궁의 술은 다르니 뭐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을 한 게 분명하다. 이에 성진은 사부에게 혼날 게 무서워 냇물에서 세수를 하는데 향긋한 냄새가 물을 따라 내려오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는 여덟 명의 선녀가 다리 위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들 또한 성진처럼 심부름을 위해 육관대사를 찾았다가 잠시 농땡이를 부리고 있었던 것.
성진은 선녀들에게 길을 비켜달라 말하지만, 이 요망한 선녀들은 순진한 승려를 골탕 먹이고자 길을 비키지 아니하고 저~ 먼 길로 돌아가라 한다. 이에 성진은 “냇물이 깊은데 어떻게 건너느냐,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맥주병이다”라고 말하지만 선녀들은 “달마대사는 갈댓잎을 타고 바다도 건넌다 하는데, 님은 그런 거 할 줄 모름?”이라며 남자의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될 자존심을 건드리고 만다.
이에 성진은 술도 한잔했겠다 바로 선녀들과 다이다이 드잡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8명에게 집단 린치를 당할 것에 살짝 쫄려 복숭아꽃 가지를 꺾어 든다. 그리고 이를 바닥에 던져 명주 여덟 개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도술을 뽐내며 선녀들에게 센스있는 선물을 한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너... 삥 뜯긴거야...” 그렇게 통행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 성진은 꼰대 용왕의 술 권유와 양아치 8공주 언니들과 노닥거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곧바로 참선에 든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육관대사는 성진을 불러 모든 제자 앞에서 꼽을 준다. 이에 성진은 위와 같은 이유를 들며 변명해 보지만 육관대사 역시 개꼰대 고집불통 소인배였는지라 바로 지옥행을 보내버린다. 염라대왕은 성진을 양 처사의 자식, 양소유로 환생시킨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지옥은 지옥인데 ‘행복지옥’이었던 것. 일단 양소유는 존잘로 태어난다. 뭐 인생 난이도 EASY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게다가 자라면서 전생의 기억은 잃어버려 승려의 순결 따윈 존잘의 삶을 사는 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양소유는 그야말로 XX에 미친놈 같았는데 무엇보다 그것을 1순위로 두는 아주 상남자의 가치관을 지닌 놈이었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진채봉에게 한눈에 반해 장원급제고 뭐고 잘해보려 했으나 갑작스런 변이 일어 진채봉을 버리고 빤스런을 하게 된다.
이후 3대 미녀 중 하나라 소문난 기생 계섬월을 글재주로 꼬시고, 정경패의 얼굴을 구경하고자 여장까지 해대며 거문고를 켜기도 하고, 정경패의 시녀이자 베프인 가춘운이 귀신으로 분장해 양소유를 속이려 하였으나, “얼굴 고운 미녀 저렇듯 하고 정이 많은 미녀 저렇듯 하니 신선과 귀신을 분별하여 무엇하리오?” ‘오히려 좋아(?)’를 시전하며 귀신이고 사람이고 할 거 없이 XX에 몰두한다.
이후 전장에서 자신을 죽이려 온 자객(사실 양소유를 만나려고 온 위장 자객이었지만)과 XX를 하느라 장수란 놈이 군사들은 나 몰라라 하고 3박 4일 텐트에만 처박혀 있고, 몸에 비닐을 지닌 인어까지도 가리지 아니하고 그 짓을 해대니. 참으로 어질어질하고도 편견 없는 그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잘난 외모와 능력 덕에 승상의 자리와 결국 공주까지 얻는 데 성공하며 2처 6첩, 도합 8명의 아내를 얻는 것에 성공한다. 그렇게 8명의 아내에게서 아들, 딸 골고루 나아 평온한 나날을 지내고 있던 터에 갑자기 “승상의 부귀 풍류와 여러 낭자의 옥 같은 용모, 꽃다운 태도는 이제 어디 갔냐고 할 것이니 어찌 인생이 덧없지 않으리오?”라며 백 년 후 후세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며, 출가의 뜻을 밝힌다.
원래 배부르고 등 따시면 애먼 생각이 드는 법. 이때 육관대사가 양소유의 앞에 나타나며 “여~ 히사시부리~ 롱 타임 노 씨~” 하지만 “누구...세요...?”를 시전하는 양소유. 그러자 육관대사는 돌지팡이로 난간을 두드려 양소유의 꿈 생활을 없애고 성진을 잠에서 깨운다. 다시 승려로 돌아온 성진은 스승인 육관대사에게 “제자가 불초하여 마음을 잘못 먹어 죄를 지으니 마땅히 인간 세상에서 윤회할 것이거늘 사부께서 자비로우시어 하룻밤 꿈으로 제자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혜는 천만겁이라도 갚기 어렵도소이다”라며 눈물즙을 짜낸다. 양소유가 온갖 부귀영화를 질리도록 이루고 난 이후니 망정이지 만약 그것에 한창 미쳐있던 망나니 시절에 잠에서 깨웠다면 육관대사의 수염은 죄다 쥐어 뽑혔을지도 모른다.
<구운몽>은 필시 인생의 덧없음과 같은 심오함을 내포하고 있으나, 연애물이자 막장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무리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던 시기라지만 친구에게 “야, 진짜 좋은 남자 있는데 소개시켜 줄게!”가 아니라 “우리 남편 쩌는데 너도 같이 결혼할래?” 이것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 두 세기를 거쳐 살고 있는 내게도 이해하기 벅찬 부분이다. 저자인 김만중이 혼자 있는 어머니의 적적함을 위로하고자 소설을 지었다고도 하니 예나 지금이나 조선인이 좋아하는 이야기에는 막장 요소가 필수인 듯하다.
과연 현대인은 <구운몽>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할까? 이번에 나는 <구운몽>을 다시 읽으며 “이녀석... 인생을 꽤 잘 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기계발 유튜브 쇼츠에서 멋드러진 정장에 미용실에서 손질한 듯한 정갈한 머리, 자신감에 찬 눈빛과 여유로운 몸짓, 목소리로 소위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인생은 짧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런 21세기 현대판 자기계발 쇼츠에 물든 내게 양소유의 일장춘몽에서의 삶은 어찌 보면 이상적이지 아닐까 한다.
한낱 꿈에 불과한 짧은 인생을 재미나게 즐기며 자기 하고 싶은 거 왕창 하는 양소유의 삶 vs 머리 빡빡 밀고 하루 종일 목탁만 두드리며 풀만 먹는 성진의 삶. 과연 <구운몽>의 주제 의식이 현대인에게 잘 먹혀들지 의문이다. 아니. 솔직히 <구운몽>이 쓰인 17세기 조선시대조차 덧없는 인생과 같은 교훈을 전달하는 책보다는 조선 최고의 막장 하렘물로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어찌 됐든 <구운몽>에서 말하는 부귀의 덧없음은 많은 성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발견한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혹자는 부귀를 원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며, 더 많은 부귀는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 역시 어느 정도는 타당한 이치이며 다수가 쫓는 삶의 방향이다. 또한, 개인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더 많은’에 있다. 사람은 자고로 적응의 동물이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잠깐의 환희와 불평 이후 어느새 귀신같이 녹아든다. 그리고 특히 환희의 순간은 짧으며 한번 올라간 눈은 아래를 바라보기 힘들게 한다. 시속 10㎞로 내달리던 사람이 100㎞로 달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10㎞의 속도는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점차 속도를 높여 더 빠르게 질주하길 원한다.
하지만 속도를 높일수록 쾌감과 환희의 순간은 점점 짧아지고 속도가 줄었을 때 느끼는 답답함은 커진다. 이는 음식, 집, 옷, 전자기기, 심지어 사람까지,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거의 모든 것에 접목된다. 한번 올라간 취향은 다운그레이드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인간의 성향을 고려할 때 행복을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바로 우량주 중심의 안정적인 ETF 상품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우상향하는 삶이다. 하지만 인간의 인생은 흔히 파도와 비유되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만큼 일관된 우상향의 삶을 사는 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노력과 단 천원으로 로또에 당첨되는 천재일우(千載一遇)급 행운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 가장 완벽한 방법은 바로 <구운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욕망을 비우는 것이다. 자고로 밑 빠진 독은 커다란 물웅덩이에 독을 통째로 집어넣거나 그냥 채우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일관된 우상향의 삶처럼 도달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욕망을 비우는 일이 쉬웠다면 세상은 온통 현자들로 가득하여 법 없이도 굴러가는 아름다운 곳이 돼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아니한 법. 지금 말하고자 하는 취지와는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속세에 속한 범인으로서 성진과 같은 극단적인 도인의 길을 걷는 건 쉽지 않다. 이에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양소유의 삶과 욕망을 비우고 마음의 안정을 바라는 성진의 삶을 적절히 섞는 것이야말로 현세의 범부인 나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삶의 자세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을 모두 이루며 살 수도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오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자세를 취하는 게 행복을 위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꽃이 하나, 둘 봉우리를 싹틔우는 요즘. 길지 않은 달달한 춘몽과 같은 봄기운을 마음껏 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