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하나, 그늘 하나 없는 잔인한 길을 걷는데 앞에 웬 슬리퍼 차림의 여자가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의 느린 속도에 슬슬 간격이 좁혀지고 옆에 다랐을 때 걱정 어린 마음에 괜찮냐 물었다. 그렇게 물음에 반응하며 얼굴을 돌린 그녀의 표정은 나의 예상과 절뚝이는 다리와는 상반되게도, 방금 차가운 얼음물에서 건져낸 싱싱한 채소와 같았다. 그녀의 생기 넘치는 표정에 절뚝이는 다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다리인 마냥 부조화를 이뤘다. 그녀는 팔을 이리저리 흔들어가며 신나게 영어가 아닌 처음 듣는 언어로 샬롸샬롸 말하는데 대략 괜찮다는 뜻인 거 같았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그녀의 거동이었지만 표정과 생기 넘치는 몸동작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고, 그렇게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난 다시 앞서갔다. 그리고 두어 시간 뒤 마을의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다시 그녀를 마주쳤다. 그녀는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아까와 같이 싱싱한 표정과 동작으로 격한 반가움을 표현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새로 산 신발을 자랑하며 또 샬롸 샬롸 신나게 얘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말이 모두 이해가 되고 있었다.
‘이게 왜 이해되는 거지?’하는 의아함에 누군가 내 귀에 번역기를 달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어 소름이 돋았다. 헝가리에서 온 ‘아레카(앞서 팜플로나(Pamplona) 편에 등장했던)’는 영어를 잘 못할뿐더러(실제로 몇몇 핵심 단어를 제외하곤 영어를 하지 않았다) 본인 나라의 언어로 말하는 게 좋다고 했다.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밝고 자신감 넘치는 아레카의 표정에 그야말로 ‘멋’이란 게 넘쳐흘렀다. 나 역시 뛰어나지 않은 영어 실력 탓에 외국인과 대화할 때면 불편함과 동시에 살짝 주눅이 들기도 해 깊게 친해지지 못하고 거리를 둘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레카는 언어장벽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 게 다가가고 대화를 나눴다. 그런 아레카를 보고 있자니 사람을 사귐에 있어 핵심은 말보다 마음이란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하였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하기란 수만 배 힘겨운 것. 그렇기에 아레카가 더욱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나의 소심함은 언제쯤 극복되려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