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안 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정식루트로 완주하기에는 나 같은 쪼렙에게는 힘든 길이었다. 앞서 말했듯 산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장비를 지녀야만 정식루트로의 완주가 가능한 길이었고, 그렇기에 난 최대한 리키안 웨이를 따르되 나만의 루트를 만들어 나아갔다. 그래서 지도상에 하루 안에 주파할 수 없는 산길이 나올 때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도로를 걷고 있노라면 지나치는 차들의 경적 응원을 받기도 했으며, 몇몇은 뜻하지 않게도 타라며 손짓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트레킹하는 입장에 차를 얻어 타는 것에 대한 이유나 고마움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감사한 제안에도 거절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거듭될수록 나의 가치관은 조금씩 흔들렸다. 뭐, 굳이 나 홀로 볼 거 없는 도로를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정식루트를 온전히 완주하는 것도 아니고, 체력증진을 목적으로 걷는 것도 아닌데, 가능하다면 이런 의미 없는 도로와 같은 길은 빠르게 건너뛰고 마을이나 유적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래. 앞서 언급한 이유는 제쳐두고, 점차 바닥을 보이는 체력과 아려오는 무릎과 어깨가 나의 트레킹에 대한 정의를 말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걷는 행위로써 얻는 형용하기 힘든 에너지와 만족감, 응축된 시간의 감각을 최대한 얻고 싶었으며, 괜스레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신세를 지기가 싫었다. 게다가 튀르키예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나를 도저히 가만두지 못하고 차나 과일, 식사까지 퍼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었기에 이 모든 호의를 누렸다가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뻔뻔이가 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리하여 난 나름의 규칙을 정했는데 먼저 차나 과일 정도는 얻어먹되 식사는 거절하기로 했다. 차 한 잔 정도야 누구에게나 가볍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며, 서로 대화를 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상차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일 역시 부담이 적었는데, 고가의 외국산 과일이 아니라 대부분 앞마당 뒷마당에서 손쉽게 딸 수 있는 선인장과 같은 식물의 열매인 칵투스라 불리는 과일을 주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사는 얘기가 달랐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내가 이런 튀르키예 사람들의 성향을 잘만 이용했다면 공짜 밥에 더욱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의 양심과 코리안의 체면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차를 얻어탈 때 역시 절대 먼저 태워 달라고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차 중 나와 같은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태워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천사와도 같은 마음씨의 사람들의 호의만 받기로 한 것이다. 이 역시도 기껏 해야 다음 마을 정도까지였다. 리키안 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달리 누군가를 만나기 힘든 외로운 길이었기에 이렇게 마주한 사람과 대화도 하며 심심함을 달랬다.
리키안 웨이라는 길고도 험한 길을 나아가며 이용한 교통수단이 비단 차뿐만은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고, 트렉터를 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물길을 만나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께서 손수 노를 저어 움직이는 나룻배로 날라주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리키안 웨이는 정말 다이내믹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수많은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나 위험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거나, “저 사람들은 뭘 믿고 다 큰 청년을 집에 들이고 차를 태워주지?”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장정 서너 명이 타고 있는 트럭이 와서 태워주겠다 할 때는 잠시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운 좋게 선한 사람들만 만났다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만의 규칙 안에서 적당히 사람을 경계하고 신뢰했기에 무사히 길을 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의 20대의 건강한 몸뚱이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