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를 쫓는 녀석들

by 서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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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 보면 혹여나 야생동물과 마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에 늑대나 곰과 같은 육식 짐승을 마주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일단 내게는 묵직한 배낭 하나와 등산 스틱 두 개가 있다. 난 일단 배낭을 재빨리 벗어 양손으로 쥐고 있다가 덤벼드는 짐승의 이빨을 방어한다. 그렇게 짐승이 배낭에 막히고 배낭을 물어뜯고 있을 때 두 개의 스틱으로 정확히 짐승의 두 눈을 찌른다. 그러면 짐승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지만 이미 나의 공격에 시야를 잃은 상태. 그저 방위 없이, 이리저리 목적 없는 위협만 가할 뿐이다. 그러면 난 슬그머니 배낭을 주워 메고 유유히 갈 길을 간다.


짝짝짝! 완벽하고도 현실적인 섀도(shadow) 전투. 하지만 아쉽고도 다행스럽게 나의 전투가 실현되는 일은 없었고, 이런 나의 계획이 절대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거란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튀르키예의 개들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야생의 육식 짐승과 마주하진 않았지만 튀르키예에는 목줄이 채워지지 않은 커다란 개들이 돌아다녔다. 이 녀석들은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뒤나 앞에서 튀어나와 짖으며 나를 위협했다. 크기도 어찌나 큰지 선 채로 내 허벅지 정도는 가볍게 물어뜯을 녀석들이었다.


난 그런 녀석들을 향해 “쉬이! 쉬이!” 최대한 위협적인 소리를 냄과 동시에 양손의 스틱으로 녀석의 접근을 막으며 나아갔다. 어느 정도 떨어졌다 싶어 등을 보이고 길을 걸으면 또 어느새 다가오는 녀석들. 이에 거의 뒤로 걷다시피 하며 길을 나아가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사냥할 기세로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꽤나 위협적으로 코앞까지 접근하는 녀석들. 난 그런 개들을 향해 스틱으로 쿡쿡 찌르는 시늉을 했고, 그러면 개들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나를 더욱 교란했다. 그리고 난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진심으로 찌르려 해도 이 녀석은 가볍게 피해 낼 것이라고. 그리고 곧바로 튀어 올라 나의 허벅지나 팔, 목을 물어뜯을 것이라는 걸.


그렇게 10분에서 15분여 정도 나를 위협하던 녀석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더이상 다가오지 않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자신의 구역을 침범한 낯선 이에 대한 경계였을까? 뭐가 됐든 날선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 시간은 리키안 웨이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마냥 위협이라고 생각했던 개의 이런 행동이 ‘나의 착각이었나?’ 싶은 날이 있었는데, 바로 우카기즈(Üçağız) 를 벗어날 때였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길을 나서는데 개 두 마리가 들러붙었다. 한 마리는 여차하면 발길질 한 방으로 멀리 날려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녀석이었는데, 나머지 한 녀석은 덩치가 큰 게 위협적이었다.


두 마리의 개들은 내 주위를 배회하고 짖으며 끊임없이 나를 긴장케 했고, 난 양손의 스틱으로 한 마리씩 경계하며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결코 뛰지는 않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개는 뛰는 사람을 문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평소에 만났던 녀석들과는 다르게 이 녀석들은 되돌아갈 줄을 모르고 끝까지 쫓아왔는데, 그렇게 대치가 길어지자 슬슬 서로에 대한 경계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녀석들은 내 앞에서 쫄래쫄래 걷기 시작했다. 마치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길을 안내해주는 듯한 모습에 난 완전히 경계심을 풀었고 개들에게 슬슬 말도 걸기 시작 했다.


“너네 길 안내해주려고 온 거야? 나 혼자 걷기 무서울 까 봐? 응? 그런 거야?” 물론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듯 한 번씩 나를 향해 뒤돌아봤다. 그리고 마을의 끝에서 녀석들은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정말 이 녀석들이 나를 배웅하러 온 것이었던 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고, 작별의 아쉬움과 고마움을 담아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혹시나 이전의 개들도 조금 경계심을 풀고 가까이 다가갔다면 이처럼 동행하듯 함께 걸을 수 있었을까? 그저 낯선 손님이 반가워서 짖으며 다가왔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상해보면 그동안의 개들이 잇몸을 드러내며 짖지도, 특유의 으르릉거리는 위협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도리질을 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으며, 혹여라도 그런 안일함에 경계심을 풀었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아찔함에 생각을 접었다. 동물을 이해하고 친해지는 건 참으로도 요원한 길이지만,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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