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恨)

by 서퍼스타
KakaoTalk_20230131_101911318.jpg
KakaoTalk_20230131_101911318_01.jpg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초반엔 모든 게 색다르고, 신기하고,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종국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라는 말이 나오곤 한다. 물론 각국의 고유한 건축 형태나 옷, 음식이 존재하지만, 사회발전이나 세계화에 따른 익숙함이 묻어 있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 또한 정도의 차이일 뿐 완전히 이해가 불가한 영역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생활 수준, 문화를 제외하고 ‘사람’ 자체만으로 한정하면 크게 다르다 할 만한 건 피부색 말고는 없지 않을까도 하다.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 낯설어하는 사람, 때로는 사기를 치려는 나쁜X들도 섞여 있지만 어디 우리나라라고 그러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감정의 교류를 통해 언어는 달라도 결국 사람이구나. 크게 다르지 않네 하는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그들만의 정서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 정서는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로 인해 결코 이해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영역을 형성한다. 주관적인 견해로 대한민국, 우리나라 ‘한恨’의 정서가 그런 류의 감정이라 생각했다. 오랜 세월 계속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의 핍박, 가부장적 권위로 인한 차별과 설움, 대물림되는 부와 가난 등 콕 집어 말하기 힘든 종합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한 개인의 힘으로는 뚫어내기 힘든, 끝내 머리에 이고 가슴에 묻으며 살아야 하는 응어리를 지닌 민족. 그리고 이를 나타내는 감정인 한.


한은 슬픔과는 다르다. 여행을 하며 사기를 당해 우는 여자를 보기도, 불타는 집 앞에서 오열하는 한 가족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보고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이지 한은 아니었다. 사실 단기간 여행을 하며 그 나라의 깊은 면까지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며, 한과 같은 정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오로지 대한민국의 고유 감정이라 생각했던 정서를 튀르키예에서 느꼈으니, 산속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다.


길에 계시던 어르신에게 마트의 위치를 묻자 어느 한 집을 가리켰다. 난 곧장 어르신이 가르쳐준 곳으로 갔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마트의 모습이 아니었고 그냥 2층짜리 주택이었다. 난 긴가민가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사람을 찾았고 곧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먹을 걸 사러 왔다고 하자 2층의 한 방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방 한쪽에 선반이 있었고 그곳에 물과 콜라 수십 통이 놓여있었다. 그게 다였다. 역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물 하나만을 골랐는데 슬그머니 콜라를 가리키는 할머니. 난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물값을 지불하고 방을 나와 마을을 슬 둘러봤다.


도저히 숙소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오라를 내뿜는 마을. 나의 생존본능이 일순간 깨어나며 할머니에게 혹시 하룻밤 잘 수도 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주춤하더니 금방 고개를 끄덕였고 물과 콜라가 있던 옆방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난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만족의 뜻을 내비쳤다. 샤워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니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때며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곧 저녁상을 내어 주셨다. 우리나라의 상차림처럼 갖은 반찬과도 같은 음식이 여러 접시 놓였다. 음식 이름도 모르고 무슨 재료로 만든지도 모르지만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튀르키예 가정식을 먹어 봤던 터라 맛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여섯 명 정도 되려나? 난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들에게 인사를 했고 그들 역시 나를 보곤 살짝 놀라는 눈치였으나 이내 인사를 해줬다. 할머니의 가족인 듯 보였는데 할머니와 단둘이 있던 조용 한 집이 금세 복닥거리며 열기로 가득 찼다. 그들은 옆의 테이블에 모여 앉았고 할머니는 또다시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용하던 할머니의 모습과는 달리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시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가족들을 향해서도 뭐라고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화가 느껴지는 톤이었다. 마치 새빠지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아빠를 향해 한마디 쏘아붙이는 엄마와 같은 톤이었달까? 그렇게 끊이지 않는 할머니의 역정은 점점 톤을 변해가더니 서글픔으로 변했고 급기야 조금씩 눈물을 훔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할머니에게 쌓여 있는 한을 느꼈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주름진 손과 얼굴로 불을 피우며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이런 할머니의 모습에 놀랍도록 만치 무심하게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기다리는 가족들. 마치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사나. 가족이란 놈들이 나 하나 도와줄 지도 모르고 그깟 푼돈이라도 벌어보려고 모르는 사람까지 들여서 밥을 먹이고 있네. 아이고 내 팔자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난 할머니의 한 서린 푸념과 눈물에 가슴이 메이기 시작했고 서둘러 저녁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갔다.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익숙함이 느껴지는 게 내가 튀르키예가 아닌 우리나라의 시골 할머니 집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눈물 젖은 할머니의 한을 뒤로하고 얼마 후 또다 시 한의 감정과 마주했다.


길을 걷는 내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뒷자리를 가리키며 타라는 아저씨. 아저씨의 호의에 편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고 덕분에 쌩쌩한 체력으로 유적을 둘러보고 해변에서 수영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 불러 돌아보니 오토바이를 태워준 그 아저씨였다. 나는 반가움에 그를 따라가니 이발소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 마을의 이발사였던 것. 차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저씨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며 바다 근처에 살지만 근 몇 년간 가본 적도 없다는 아저씨.


마침 찾아온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며 덤덤히 말하는 아저씨에게서 가슴 한편에 쌓여 있는 묵직한 한이 느껴 졌다. 하루하루 무거운 삶을 지탱해야 하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으로 무던하고 묵묵하게 그저 견디고 있는 아저씨. 그의 덤덤한 말투가 빡빡한 인생에 대한 체념과 이미 오래전 일어난 좌절이 느껴져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한은 슬픔과는 달리 위로를 건넬 수가 없다. 슬픔은 괜찮다 토닥이며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와 함께 안아줌으로써 그 힘을 누그러트릴 수 있다. 하지만 한은 그렇지 않다. 아무나 함부로 이해하려 접근할 수 없으며, 이미 단단히 굳은 덩어리는 그 어떤 온기도, 목소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난 그저 아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 몇 개를 사서 드리고 이발소를 나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즐거움을 쫓는 여행에서 튀르키예에 너무 가까이 들어선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전 13화12. 엉엉 울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