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튀르키예의 천사

by 서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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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튀르키예의 외딴 시골 마을을 지나는 리키안 웨이. 아무래도 나와 같은 외부인의 출현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마련인데, 특히 반짝이는 눈으로 모든 걸 새롭게 바라보는 순수한 영혼인 아이들에게 난 큰 변화 없는 시골 마을에 굴러들어 온 장난감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저 멀리서도 “메르하바~”하고 인사하며, 굳이 힘차게 달려와 해맑은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그 모습을 보면 집에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기도, 명절날 집에 돌아온 자식을 맞이하는 부모님의 모습 같기도 했는데, 뭐가 됐든 나를 이렇게 진심으로 반기는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힘차게 달려온 기세가 아까울 정도로 막상 내게 당도해서는 쭈뼛거리며 수줍어한다. 정말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달려들었으나 딱히 목적 없는 만남에 하는 거라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구경하며 웃는 게 전부. 나 역시 튀르키예 말을 못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메르하바~” 인사하며, 최대한 착한 아저씨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게 다였다. 그렇게 짧은 인사 후에도 떠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난 카메라를 꺼내 길을 걸으며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말이 안 통할 땐 언어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된다. 그러면 역시나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하며 급기야 카메라를 뺏어 들고 사진을 구경하다가 자신들도 찍어달라고 조른다. 난 흥분한 아이들을 살살 달래며(언제라도 카메라를 떨어트려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들이기에) 카메라를 넘겨받고 사진을 찍어줬다. 그러면 사진을 찍기 무섭게 떼로 달려들며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난리난리. 아이들은 내게 강탈하듯 카메라를 뺏어 든다.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서 액정으로 사진을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동네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뭔가 혼내듯 소리치기도 했는데, 대략 “외국인 아저씨 귀찮게 하지 말고 너희들끼리 놀아!”와 같은 뉘앙스였달까? 꽤나 위엄 있는 중년 아저씨의 호령에도 아이들의 기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소리치는 아저씨에게 렌즈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에 아저씨는 더욱 언성을 높였는데 그 모습이 시트콤을 보는 듯해 웃음이 났다. 역시나 아이들의 천진함은 웬만해선 이길 수 없음을 다시 깨달았다.


이처럼 아이들은 내게 웃음을 줌과 동시에 때때로 길을 알 려주는 여행의 조력자도 되어주었다. 마을의 토박이로서 구석구석을 알고 있으며 쫄래쫄래 따라오거나 앞서가며 목적지까지 친절히 안내해주기도 했다. 이 나이 먹고 어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도움을 받고 “테세퀴르 에데림(Teşekkür ederim 고맙습니다)”하고 말할 때면 어린아이가 아니라 듬직한 어른처럼도 느껴졌다.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의 도움은 이리도 크고 중하다.


그렇게 매번 도움만을 받던 중 ‘케메르(Kemer)’에서 드디어 만회의 기회가 찾아왔다. 동네 구경을 하며 슬렁슬렁 걷는데 쓰러진 자전거 옆에 여자아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슬쩍 보니 자전거 체인이 빠져있었다. 주위를 슥 둘 러보니 다들 아이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흠…… 나라도 도와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혹시나 아이의 부모나 동네 어른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조금 더 뜸을 들였다. 그러나 아이의 표정에서도 기다리는 누군가가 없음을 깨닫고 슬며시 다가갔다. “메르하바~” 최대한 나긋하고 친절하게, 어린아이용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자전거를 가리키고 손을 까딱까딱 돌려 보이며 수리를 해주겠다는 의사를 최대한 전달했다. 똘똘한 아이는 단박에 알아듣고 한걸음 물러나 내게 자리를 만들어줬다. 기어에서 빠진 체인을 잡아 다시 걸친 후 페달을 돌리자 톱니에 맞아 들어가며 제자리를 찾았다. 자전거를 건네주자 활짝 웃는 아이. 그리고 내게 “고맙습니다!” 인사하곤 슝~ 하니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사라졌다. 고맙습니다라……. 여행을 하며 매번 감사의 인사를 하는 쪽은 나였는데……. 아이는 떠나갔지만, 아이가 남긴 말은 한동안 나를 멈춰있게 했다. 튀르키예, 리키안 웨이에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과 친절, 관심은 내가 길을 걷는데 큰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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