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엉엉 울었네

by 서퍼스타
KakaoTalk_20230131_100917925_01.jpg
KakaoTalk_20230131_100917925.jpg


여행을 하면서 마주하거나 표출하는 감정의 대부분은 즐거움, 감탄, 짜증, 순간적인 분노와 같이 즉각적이면서도 감정의 얇은 선상에 놓인 것들이다. 숙박비를 치르고 음식값을 계산할 때 이차함수나 미적분 같은 고차원의 수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여행에서 깊은 곳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 감정은 필요치 않다. 하지만 여행은 때로 우리의 깊은 곳까지 걸어와 꽁꽁 싸매 놓은 은밀한 감정을 집어 올린다.


‘카라오즈(Karaöz)’의 어여쁜 해변을 지나 인적이 없는 산길로 들어섰다. 남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 겔리돈야 등대(Gelidonya Feneri)를 기점으로 북으로 올라가는 리키안 웨이. 등대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남으로 향하는 마지막 발걸음 때문일까. 왠지 마지막을 향해가는 길이라는 느낌과 인적 없는 산길에서 나도 모르게 외로움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지난날의 이런저런 일을 회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또 희망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마음 잘 맞는 사람을 만나 귀여운 아이들을 낳고 알콩달콩 사는 상상.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상은 결국 나의 임종까지 그리게 되었으니…….


나의 죽음에 상상의 아내와 아이들이 슬피 우는 모습. 그리고 그런 상상을 떠올리곤 목놓아 우는 현실의 나까지. 나의 안과 밖, 온 세상이 울었다. 눈에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차올랐고, 제대로 숨쉬기 버거울 정도로 헐떡이는 호흡에 스틱에 의지한 채 허리를 굽히고 서러운 아이처럼 한바탕 울어 재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주책이구나 싶지만 당시의 슬픔은 나를 주저앉히고 온 산을 까만 잿빛으로 뒤덮었다. 그렇게 눈물에 일렁이는 산을 걸어 도착한 등대. 진이 빠져버린 나는 등대 앞에 놓인 평상에 벌렁 누워버렸다. 배낭과 신발을 벗고 드러누우니 그제야 울먹이던 가슴도, 비애로 어지럽던 머리도, 잔잔해진 호수에 잔해가 가라앉듯 맑아졌다.


그리고 웃음이 났다. 창피함과 낯 뜨거움으로 얼굴을 감쌌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에 한없이 감사했다. 여행을 하면서 때때로 벅찬 순간을 마주했을 때 “이렇게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내뱉기도 했다. 실로 여행과 모험 의 경계를 넘나들며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낯 뜨거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모한 생각이었나 깨닫게 됐다. 설사 나는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해도 이를 받아들여야 할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야 다행히 사지 멀쩡히 귀국해 잘살고 있지만 혹여라도 불상사를 당했다면 여린 우리 어머니는 견디지 못했으리라. 실제로 동생은 내가 군대를 가고, 여행을 떠났을 때 어머니께서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훗날 전해 주었다. 그 얘기에 어머니께 죄송함을 느끼며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 때 가족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맞닥뜨린 깊은 곳에 묻힌 진한 감정. 나는 한 뭉텅이 쏟아낸 눈물로 인한 후련함으로 한결 가벼이 북으로 향했다. 길에서 마주하게 될 또 다른 깊은 감정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안고서 말이다.

이전 12화11. 튀르키예의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