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ain, No gain.’ 이와 같은 진리는 뚜벅뚜벅 길을 걷는 단순한 행위에서 더욱 명확하게 효력을 발휘한다. 가령 멀리 보려면 한 걸음이라도 높이 올라야 하며, 나의 발걸음 수에 따라 보고 겪는 가짓수가 정직하게 쌓여간다. 이렇게 무엇 하나 공으로 얻어지는 게 없는 트레킹. 하지만 단순히 걸음 수 대비 얻음이 비례적으로 쌓이는 건 아니니, 길은 참으로 묘하고도 마법적인 요소를 띄고 있어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내어줄 때가 있다.
길은 자주 예기치 못한(특히나 나처럼 사전 준비를 안 한 경우에는 더욱) 시련의 구렁텅이로 나를 안내하는데, 이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을 바사삭 말려버리는 패닉 상태로 만들곤 한다. 육체와 정신이 탈탈 털린 상태에서 맞이하는 노을은 내 인생의 종말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래도 살아내라는 생명체의 끈질긴 유전자의 욕망이 나를 움직인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정말 최악이라고, 이런 짓거리 다시는 안 하겠다고, 내일 당장 택시를 잡아타고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온종일 과자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거라고 투정을 부리면 하늘에서 빛과 함께 갑작스러운 보물 상자가 내려온다. 오늘 내가 저지른 실수와 길이 부린 변덕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상황에, ‘길은 이것을 내게 보여주고자 나를 이렇게 하루 종일 괴롭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외딴 산속 절망에 빠져있을 때 '오즈칸'을 만난 것부터, 길을 잘못 들어 절벽을 오르는 무모한 감행을 하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정신을 차리고 내려와 결국에 정식 루트를 돌아가는 선택을 했을 때 마주한 절경, ATM을 찾다가 해가 지고 밤늦게까지 길을 걷다가 겨우 발견한 숙소에서 만난 '노라' 아주머니와 나를 아들이라며 반겨주던 주인아저씨 등 이를 제외하고도 고생 끝에 따라온 크고 작은 보상은 나의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해주며, 내일 다시 걸어갈 희망과 힘을 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부터 반복된 이 같은 결과에 고통스런 하루 끝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과학을 믿게 되었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큰 보상을 주려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 것이냐!”라며, 긍정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길은 단 한 번도 나의 고통을 먹튀하지 않고, 적절한 대가를 내어주었다.
길이란 참으로 정의롭고도 정직한 녀석이며, 이 세상의 다른 일 또한 길과 같지 않은가 싶다. 수많은 분야에서 소위 정상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분명히 무수한 반복으로 그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무엇이 됐든 무수한 반복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게 익숙해지고, 노련해지고, 단계별 극복 과정을 통한 깨달음을 얻게 되 고, 그런 발전의 사이클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확립하며, 나아가 세상 만물에 대입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분명 이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을 것이다.
나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걸음이라는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행위의 무수한 반복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깨달음을 얻고, 이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