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노라 아주머니

by 서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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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최악의 일정을 보낸 전날. 늦은 밤, 마을 주민의 손짓에 반신반의하며 찾은 리조트. 리조트라기보다 그냥 평범한 주택처럼 보였는데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고 가격흥정 이후 방을 내주었다. 난 샤워 이후 그대로 뻗어 잠들었다. 다음날 나는 도저히 걸을 수 없었으며, 처음으로 정비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인에게 하루 더 묵겠단 의사를 보이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그동안 길 아무데나 내팽개쳐진 배낭과 흙이며 똥이며 닥치는대로 밟고 뒤집어 쓴 신발을 빨기로 했다. 욕실에 배낭과 신발을 던져놓고 젖은 미역이 될 때까지 물로 푹 절였다. 그리고 꼼꼼히 비누칠한 후 온 힘을 다해 손으로 벅벅 문질러댔다. 그리고 다시 호스로 물을 뿌리니, 흡사 만화에서 냄새만 맡아도 즉사하는 해로운 독극물 색의 찌든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인상과 나의 목구멍을 거쳐 나오는 신음. 여태 이런 걸 등에 메고 발에 신고 다녔다니…….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나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게 나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1층 로비로 내려오니 “잘 잤어?”라며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노라’ 아주머니. 이 얼마만에 듣는 한국말인가? 어젯밤 집 문을 두드리자 나온 주인아저씨는 내가 한국 사람임을 알고 노라 아주머니를 불러왔다. 아주머니는 대뜸 한국말로 가격을 불렀고 난 이 튀르키예 시골 마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한국어에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가격흥정을 했다. 하하.


노라 아주머니는 키르기스스탄 출신으로 10년 전에 4년 정도 한국에 있었다고 했다. 서울, 일산, 부산하며 본인이 일했던 지역을 줄줄이 말하는 아주머니. 그렇게 말을 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자신의 머리를 통통치곤 “10년 전엔 한국말을 잘 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며 해맑게 웃으셨다. 튀르키예엔 4개월 전쯤 와서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있단다. 한국과 튀르키예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일했는데, 그중 한국이 최고라며 엄지를 세우는 아주머니. 한국이 너무 좋아서 비자를 받으려 했으나 받지 못해 쫓겨났다며 아쉬워했다.


속으로 ‘애초에 비자 없이 일을 한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생계를 위해 가족을 떠나 홀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아주머니의 사정을 보니 비자를 내주지 않은 우리나라가 조금 매정하게 느껴졌다. 유쾌한 노라 아주머니와의 편안한 한국어 수다 타임에 이어 오후에 온 네덜란드 커플과의 대화, 그리고 주인아저씨가 직접 개발했다는 칵테일인 ‘레몬첼로’와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니, 마치 가족과 함께하는 일요일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여유롭고 따뜻한 기분인지. 혼자도 좋지만 역시 함께가 좋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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