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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Apr 26. 2023

03. 드디어 첫걸음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도 내 발걸음과 기분은 가벼웠다. 드디어 내가 히말라야에 있다니! 여행을 시작한 지 세 달이나 지났을 때지만, 이제 막 한국을 떠나온 것 같은 신선한 설렘에 휩싸였다. 걸음을 옮기는 매 순간이 짜릿했고, 아직 갈 길이 많은 것에 행복했다. 마치 케이크 첫입의 달달함에 황홀해하며 아직 많이 남아있는 케이크를 보며 또다시 흡족해하는 느낌이랄까? 


 명실상부 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산맥은 위엄 넘치는 풍채를 자랑했는데, 높고 가파르게 솟은 산의 기세와 곳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절경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였으면 명소로 지정됐을만한 폭포가 동네 편의점마냥 흔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구름이 걷혔을 때 푸른 산새 사이에서 잠깐씩 드러내는 저 멀리 있는 하얀 설산의 모습이란…… 마치 도심에 나타난 꽃사슴처럼 순수하고도 영롱한 자태로 나의 오감과 시간을 사로잡았다. 


 저 설산을 향해 가는 나. 마치 신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의 기분이 들며 네팔 사람들이 신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살면 천하의 불효자식에 매국노도 신의 존재를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게 만족스러운 트레킹을 하는 중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는데, 그건 바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흔들다리였다. 길을 나아가며 계곡을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건너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이 흔들다리를 건너야 했다. 


 흔들다리의 무서움이라 하면 일단 존재 자체가 무서움이다. 흔들리는 다리라니! 나 같은 쫄보에겐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물이었다. 게다가 무려 세계 최고의 산세를 자랑하는 히말라야에 설치된 흔들다리. 그 높이와 다리 밑을 흐르는 거센 물줄기는 담력 훈련을 위해 의도적이고도 강제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나 스스로의 의지로는 건널 일이 1도 없는 다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흔들다리의 처참한 비주얼은 두려움을 증폭했는데, 마치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케 하는, 모험심 넘치는 비주얼이었다. 다리 중간쯤 다랐을 때 건너편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씨익 웃으며 도끼로 다리를 끊어낼 것만 같은 상상이 절로 떠오르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야 했던 이 다리를 건널 때면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호흡마저 거의 멈춘 채 무호흡을 유지하며 살금살금 건넜는데, 이런 내 속도 모르고 깨발랄스럽게 방방 뛰며 다리 건너편에서 건너오는 아이들을 마주 할 때면 다리를 붙잡은 내 손엔 더욱 힘이 들어갔다(지금 생각해 보면 내 속을 분명 알고 그런 것임을!). 이렇게 아이만으로도 아찔한데 때로는 원숭이들까지  함께 다리를 건넜다. 원숭이들은 사람을 피하려는지 줄을 잡고 다리 옆면을 타고 건넜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풀릴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절경에 취하고 흔들다리에 겁먹으며 도착한 ‘샹게(Syange).’ 나는 흔들다리 끝에 떡하니 앉아 있던 주인장의 손에 이끌려 방을 잡았다. 흔들다리를 건너고 난 불안하고도 약해진 나의 마음을 잘 파고든 전략이었을까? 그렇게 다른 숙소는 보지도 않고 첫 숙소에 짐을 푸니 방에는 나의 옛 고시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네모난 방에 작은 침대만 하나 덩그러니. 방은 참으로 소박하고 초라했지만, 창에 담긴 풍경은 그러지 않았다. 힘차게 흐르는 강과 세상을 단절시키려는 의도로 세워진 듯 끝없이 펼쳐진 성벽과 같은 산줄기. 그리고 그런 산을 잇는 다리까지. 드디어 히말라야에서의 하루가 시작되고 끝이 났다. 차의 경적 대신 풀벌레 우는 소리와 물소리로 메워진 산. 눈가는 모든 곳이 절경인 이곳.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나는 히말라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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