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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Apr 28. 2023

04. 네팔인 in 한국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나는 몰랐다. 수많은 네팔 사람들이 한국과 연관돼 있다는 걸. 산을 오르기 전, ‘카트만두’에서부터 네팔인의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등산 관련 상점에 들어설 때면 높은 확률로(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한국어를 하는 점원을 만날 수 있었고, 길에서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끼리 한국어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몰래 작당모의를(?) 할 때가 있는데(예를 들어 “여긴 너무 비싸니 이전 집으로 가자” 등), 카트만두에서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어 능력자들 때문에 어디서나 말조심, 쉽사리 내통할 수가 없었다. 담벼락이나 전봇대에는 ‘한국어를 배웁시다’와 같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어 과외 홍보 전단과 같은 것이 붙어 있기도 했다. 네팔 사람의 10명 중 1명은 한국어를 한다는 한 상점 주인아저씨의 말이 과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체감도였다. 


 산에 올라서도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는 네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차메(Chame)’의 어느 한 롯지(숙소)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을 때였다. 따스한 우유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소파에 누워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한국인이냐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옳다구나!’ 본격적으로 말을 붙이는 아주머니. 나도 ‘옳다구나!’ 싶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 홀로 여행에서 이런 소소한 수다 타임이 어찌나 재밌던지. 


 처음에 아주머니는 여동생이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으잉? 여동생이 한국에서 왔다고? 아주머니도 한국 사람? 입양을 한 건가? 서로의 짧은 영어 실력에 오해가 있었고, 알고 보니 여동생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여동생이 보내준 사진을 보여주는 아주머니. 사진에는 아주머니의 여동생이 ‘XX 숯불갈비’ 간판 앞에서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지금은 큰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여동생에 대한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지는 말투에 나까지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렇게 주인아주머니와의 친밀도 상승으로 인해 주방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밤이 되면 쌀쌀해지는 산속 날씨에 밥 짓는 불에 몸을 녹이며 계속해서 아주머니와 수다를 이어갔다. 아주머니는 나와 얘기하면서도 혼자서 수 가지의 음식을 일순간의 막힘도 없이 뚝딱뚝딱해냈다. 


 어느 날은 길을 걷는데 뒤에서 대뜸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날아들었다. 한국어 자동반사 기능에 의해 뒤를 돌아보니 네팔 아저씨가 미소짓고 있었다. “한국말 할 줄 아세요?”하고 묻자 한국에서 무려 3년이나 일했다고 답하는 아저씨. 택배인지, 이삿짐인지 어쨌든 짐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내가 힘들었냐 묻자 말없이 미소만 지어 보이셨다. 아저씨 말로는 동대문 구두공장 같은데 네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살면서 네팔 사람을 만나본 적도, 이렇게 많은 네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신기하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께서는 팔려고 내놓은 사과 바구니에서 먹으라며 사과 하나를 건네주셨다. “단네밧~ 고마워요~” 인사하고 깨어 무는데, 작지만 옹골찬 단맛을 가진 사과는 정말 맛이 끝내줬다. 하! 히말라야에서 먹는 사과라니!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에 취한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한국과의 인연이 있는 네팔의 특성상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도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롯지에서 만난 한 네팔인 가이드는 팔에 태극기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에 내가 말을 붙이자 이런저런 정보도 알려주고 내가 짠 계획도 검토해주었다. 본인을 고용한 산행객의 눈치가 보일 정도로 내게 바싹 붙어서 정보를 주는 게 살짝 미안하기도 했지만, 공짜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내심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하.  


 ‘리키안 웨이’를 걸었던 튀르키예도 그렇고 네팔도 그렇고 이처럼 우리나라에 대해 우호적인 곳을 여행할 때면 심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함을 갖게 된다. 외교활동이 국가적 측면에서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결속을 위한 행위일 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는 여행 시 이런 심적 안녕과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국민들의 모습에 더 큰 체감을 하게 된다. 히말리야에 오르지 않았다면,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네팔 사람들의 한국 사랑. 네팔과 한국이 이렇게 은연중에 긴밀하게 연 결돼 있을 줄이야. 나 역시 네팔에 대한 끈끈한 감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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