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발걸음
세상에 단 두 명. 예의는 별로 없지만 호칭과 존대만큼은 철저한 유교보이인 내가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말을 놓는 사람. 그중 한 명은 어학연수 시절 룸메이트였던 형이고, 한 명은 나의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등장하는 인물, J형이다.
J형네와 우리는 한 주택단지에 살았다고 한다. J형네와 우리 집 말고도 두 집이 더 있었는데, 비슷한 또래의 갓난쟁이들을 키우며 살던 부모님들은 이사를 가서도 서로의 금방에 터를 잡았다. 네 집이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살며 가족, 친척처럼 지냈다.
내 최초의 기억은 같은 아파트 친구들, 혹은 J형을 비롯한 이들과 노는 것으로 시작한다. J형과 나는 흔히 남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불알친구인 셈이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집 중 J형네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는데 문 앞에서의 노크만 빼면 정말 제집과 다름없이 드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 J형을 찾아 놀다가 끼니때가 되면 아주머니께서 차려주는 밥을 먹고, 여차하면 잠도 자고 다음 날 아침까지 해결한 후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작은 체구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분이셨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와 함께 푸근하게 반겨주던 아주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났다. 아주머니는 나와 형이 놀고 있을 때면 종종 피자빵을 만들어주셨다.
아주머니의 시그니처와 같은 피자빵은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식빵 위에 햄과 치즈, 옥수수 등 각종 토핑을 올려서 오븐인지 전자렌지에 돌려주셨는데, 어린 시절 집에서 피자빵을 만들어 내는 아주머니를 보곤 적잖이 놀랐다. 빵은 빵집 같은 거대한 시설을 갖추고 전문 교육을 받아야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의 피자빵과 J형 중 무엇이 더 형네를 찾게 만드는 요인이었나 물으면 쉽사리 답할 수 없다.
그렇게 동네를 옮겨가며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지만, 지드레곤의 노래처럼 영원한 건 절대 없는 법. 가족처럼 지내던 우리도 어느새 각자의 삶을 찾아 하나둘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들이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하나 둘 동네를 떠나며, 이제는 더 이상 마음만 먹으면 달려가 부를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라 했던가.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잊고 각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부모님들끼리는 종종 안부를 묻곤 했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냥 “그래 어렸을 때 그런 형과 친구들이 있었지”하는, 어느새 과거의 추억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과거가 되었을 때 J형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에 있다가 서울로 혼자 올라온 나의 소식을 듣고는 한번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만났다. 형네 집에서 로봇과 자동차를 들고 놀던 우리는 커피잔을 앞에 두고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 시시콜콜한 사회의 가십거리, 남들이 하는 현 정부 욕까지 끊임없이 소재를 찾았다. 하지만 숨 한 번 고르는 사이에도 강철판 같은 침묵이 우리를 찍어 눌렀다.
이후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조금은 의무적인 만남을 가졌다. 마음만 먹으면 더 자주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굳이 그러지 않았다. 형과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 불알친구라는 소장품을 지키는데 들이는 비용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면 괜찮다는 마음.
하여튼 그렇게나마 서로의 안부를 알게 되었고 아주머니께서 아프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이미 오랜 시간 입원 생활 중이셨다. 난 언젠가 찾아뵈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언제나 ‘다음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에게 문자가 왔다.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였다. 수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아주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난 퇴근하자마자 장례식장을 찾았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주머니의 사진. 정말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었다. 그때 그 시절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아주머니 앞에 절을 올렸다.
형과 아저씨에게 절을 하고 분양소를 나와 상에 앉았다. 직원분께서 반복 숙달된 능숙한 솜씨로 빠르게 반찬과 육개장을 차려주셨다. 그리고 형도 잠시 후 내 앞에 앉았다.
그러자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에 넣었다 뺀 수건을 쥐어짜듯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눈물. 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받아냈다. 통제 안 되는 눈물과 달리 입만큼은 필사적으로 앙다물었다. 험한 고문에도 결코 비밀을 사수하겠다는 독립투사처럼. 입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슬픔은 눈으로 몰려 더 많은 눈물을 만들어 냈다.
그저 과거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아주머니와 형이었는데. 할머니와 이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나인데. 도대체 이 오래된 눈물은 내 몸 어디에 고여있었던 것인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떨어지는 눈물에 피자빵이 생각났다. 그리고 겨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정도로 진정됐을 때 J형에게 건넨 첫 마디는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신 피자빵 진짜 맛있었는데”였다. 형은 대답했다. “맛있었지.”
J형은 아주머니께서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하셨기에 마음의 준비를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했다. 그렇게 늦은, 너무 늦어버린 아주머니와의 재회 아닌 재회. 만약 내가 좀 더 일찍이 아주머니를 찾아뵀더라면 어땠을까? 어린 날의 온기가 아직까지 이렇게 뜨겁게 타고 있는 걸 알았다면, 아주머니의 온화한 미소를 보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큰 줄 알았다면...
아주머니를 직접 뵙고 어린 날 만들어 주신 피자빵이 정말 맛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말을 듣고 인자하게 웃어주는 아주머니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