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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Sep 01. 2017

내가 뭐라고

<철없는 30대의 유학병>

백수가 된 뒤 가장 힘든 것은 돈이었다. 귀차니스트인 내가 알뜰하게 살아보겠다고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도 다 이런 이유였다.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가 되면서 내 명의로 된 전셋집 탓인지 핸드폰 요금보다 건강보험료가 더 많이 나왔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향으로 전입신고를 일찍 하지 않은 내 탓이었으므로.


건강보험료와 휴대전화 요금,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된 서울 집값을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어차피 각오한 일이었다. 영국 한 달 기숙사비나 서울 월세가 거의 비슷했으므로. 기회비용을 계산해봤을 때 영국에 일찍 가는 것보다 서울에 좀 더 머무르는 편이 나았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


허리가 휘는 월세를 감당하면서까지 서울에 남은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만나야 할 사람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서울에 많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치부에서 함께 일했던 타사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같은 '꾸미'(각주 : 정치부 기자들이 취재 효율성과 친목 도모(?)를 위해 만든 사적 모임. 한 꾸미에 소속된 기자는 6인 안팎이다)에 있었던 선배였다. 대선이 끝나고 퇴사 결심을 주변에 공유했을 때 선배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결정을 내려 부럽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1년인데 휴직을 하지 왜 사표를 쓰냐"는 수도 없이 들을 때였다. 천성이 나약한 나는 돌아올 다리를 끊고 떠나야지 독하게 공부하고 새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 그 선배의 한 마디에 큰 힘을 얻었다.


선배와 나는 수요일 저녁을 먹었다. 나는 직장인들의 평일 저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회식이라도 없는 날엔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었을 텐데 선배는 백수의 타임 스케줄에 맞춰 수요일 저녁 시간을 내줬다. 심지어 백수는 바쁜 직장인보다 10분이나 늦는 무례함을 범했다ㅠㅠ (죄송합니다 선배....)


선배랑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질 때쯤 선배가 양복 안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선배 입맛에 잘 안 맞을 법한 '타이 음식'을 같이 먹어주고, 사준 것만 해도 감사한데.... 나도 눈치가 있다. 저것은 분명히 돈이었다.


나는 세 번 거절했다. 그러자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 : "진짜 안받을꺼야?ㅋㅋㅋ"


그래서 나는 답했다.


나 : "아니요... 선배 진짜 감사하게 잘 쓸게요..ㅠㅠㅠㅠㅠㅠㅠ"

 

선배는 "주변에 유학을 떠나는 후배들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후배가 생기면 꼭 챙겨주고 싶었다"면서 그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같은 회사도 후배도 아니고 다른 회사 후밴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저녁을 사고, 힘들게 일해 번 월급의 일부를 내게 나눠주고, 자신의 방식으로 나의 미래를 응원해주는 선배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내 인생을 응원하는 주변인들의 마음이 고맙다. 이 빚을 다 어뜨케 갚나여ㅠㅠㅠㅠㅠㅠ

# 사람들의 응원

누구는 나보고 "용기 있다"고 말한다. 그건 내 성격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는 천하의 겁쟁이고, 쫄보고, 소심쟁이다. 영국 유학을 결심하는데만 3년이 걸렸고, 휴직과 사직 사이에서 수백 번 고민했다. 사표 쓴 것을 지금껏 단 한 번도 후회하진 않았지만 1년 뒤 0에 가까워질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종종 우울해진다. 오피스텔 사장님한테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달라"고 전화를 거는 용기를 내는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린 소심쟁이가 바로 나다.


쫄보인 나를 붙들어준 것은 주변인들의 응원이었다. 대선 기간 IELTS(영어시험) 시험을 공부할 수 있게 힘을 주고 궁뎅이를 때려준 것은 영국행을 응원한 정치부 타사 기자 동기들이었고, 내 결정이 못 미더워 갈팡질팡할 때마다 확신을 심어준 것도 주변 친구들이었다. 좋아하는 이들의 "잘했어" "잘하고 있어"라는 한 마디에 힘을 얻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국 대학원에 붙을 수 있었던 것도 친구들과 주변인들 때문이었다. 미국 친구들은 거지발싸개 같은 영문 자소서와 추천서의 유치한 문장을 고급진 영어로 고쳐주었다. 그럴듯한 자소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영어가 모국어인 너그러운 친구들의 집단 지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구글 번역기와 공유 문서인 Google Docs는 이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다!!!! (Nikki, Erin, 제인언니, 동주, Doug 모두 고맙습니다...ㅠㅠ) 또 내 능력을 과대 포장해 추천서를 써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내년 학기 대학원 원서를 쓰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후배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봉투에 유로화를 넣어준 선배, "이것도 런던 가서 사면 다 돈이야"라며 오이스터 카드(런던 교통카드)와 남은 파운드를 손에 쥐어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H 언니, "전기장판 작은 거 살까요? 큰 거 살까요"라는 쓸데없는 질문에 "추우면 서럽다. 큰 거 사"라며 성실하게 조언하는 P 언니, "황수영이 멀리 가는데 먹고싶은거 먹여야지"라며 간장게장집을 찾아준 친구, 변덕스런 영국 날씨를 잘 이겨내라고 바람막이를 준 친구, "해외 가서 젤 아쉬운 게 이거예요"라며 마스크팩을 준 동네 동생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만큼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돈이 있으면 홀랑 써버리는 내 성격을 잘 아는 친구들은 '이거 꼭 파운드로 바꾸렴'이라고 적힌 봉투를 내게 건넸다. 짧지만 강한 문장.. 내 성격을 제대로 간파했군ㅋㅋㅋㅋㅋㅋㅋㅋ돈가스를 먹다가 눈물이 터져 버렸다. 내가 뭐라고, 정말 내가 뭐라고.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2주 뒤 나는 이민가방을 끌고 영국 브리스톨로 간다. 한국말로 공부해도 힘들 대학원 공부를 남의 나라 말로 하는 것은 분명 힘들 것이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곁에 없으니 많이 외로울 것이다. 30대의 두뇌로 20대 대학원생과 경쟁하다보면 멍청한 내가 싫어지는 순간도 올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을 만큼 힘들 때 나를 응원한 주변인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며 1년을 견디려 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친구와 누워서 같이 본 서울 하늘. 이런 일상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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