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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Dec 12. 2022

목적 있는 글쓰기

어쩌다 홍콩

고단한 11월이 지나가고 벌써 12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내 인생에서 석사 이후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난 3주는 내년 집중력까지 가불해 공부했던 시기였다. 필수 전공 세 과목 에세이 세 개를 모두 제출하고 보니 레퍼런스를 제외하고도 총 1만 5000 단어가 넘었다. 20대 젊은이들과 공부하고 경쟁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30대에 하는 공부의 장점은 마감에 강하다는 점이다. 신문사 생활 7년과 국제기구에서 약 3년간 홍보 업무를 하며 얻은 것이 있다면 마감 시간에 맞춰 정해진 분량의 논리적인 글을 써내는 기술이다. 물론 글이라는 것이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다듬으면 더 예뻐지겠지만, 모든 글에는 마감이 있다. 글은 보면 볼수록 빈틈이 계속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과 내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쓸 수 있을 만큼의 글을 써내는 것이 능사다. 그렇게 11년 회사 생활 경력의 30대 박사생은 꾸역꾸역 마감을 지켜 냈다.  


추울땐 해가 잘드는 거실에서 공부!
에세이 3개를 완성한 내 공부방.


에세이 세 개를 쓰며 다시 한번 되새긴 명제가 있는데 바로 모든 글에는 목적과 타깃 독자가 있다는 것이다.에세이는 내가 수업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교수님에게 평가받는 글이다. 1차 독자는 나, 최종 독자는 교수님이다. 어떤 에세이를 써야 하는지는 수업 중에 이미 교수님이 설명을 했거나, 강의 계획서에 교수님이 원하는 에세이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우리는 수업 중에 여러 번 에세이 주제에 대해 발표했고, 교수님들이 개선해야 할 부분을 구두로 알려주셨다. 내가 만족하는 에세이를 써도 채점자인 교수님이 이해하지 못하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글쓰기다.


또한, 박사 과정을 시작한 뒤 글만 썼던 지난 4개월을 돌이켜 보면 단점도 있지만 회사 생활과 비교해 장점도 은근히 존재한다.


첫째, 먼저 지도 교수만 잘 만나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회사 생활할 때는 직속 상사를 잘 못 만나 고생한 적도 있었고, 운 좋게 직속 상사를 잘 만나더라도 같은 팀 동료, 협업해야 하는 옆 팀 진상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박사 공부의 스트레스는 나와의 싸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통제 가능한 스트레스다. 4개월 박사 공부로 얻은 깨달음은 내 멘탈 관리를 잘해야 4년간의 긴 공부를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박사 공부는 배움의 기쁨이 있다. 내가 이거 배워서 어디 쓰겠냐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몰랐던 이론과 학자들의 책과 논문을 읽을 땐 지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이 가끔 (아주 가끔) 들어 이 맛에 사람들이 힘든 박사 공부를 하는 것 같다.


셋째, 내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다. 2학기에 티칭 어시스턴트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지금처럼 완전히 내 시간을 누리기는 어렵겠지만, 매일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재택근무하듯이 공부해도 되고, 유동적으로 내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 좋다.


넷째, 공부만 해도 월급을 주는 것이 신기하다. 석사 때는 영국 애들보다 훨씬 더 비싼 외국인용 등록금을 내고 공부했는데, 박사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월급을 주는 것이 아직까진 신기하다. 하지만, 박사 2~3학년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니 학교와 박사생은 '고용주 = 고용인'의 관계로 공부만 하라고 월급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제 박사 과정을 졸업하려면 무조건 저널에 논문을 1개 이상 내야 하고, 학비 장학금과 박사 월급을 유지하려면 홍콩 정부와 학교에서 제시한 학점 기준도 맞춰야 한다. 내가 지난 3년간 다녔던 기구들에서도 계약을 종료하거나 일정 시기가 돌아오면 업무 평가 보고서를 냈는데, 박사 과정에선 학업 성적과 연구 성과가 회사의 업무 평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박사 생활을 월급은 적지만 휴가(방학)가 많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4년짜리 직장 생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4년 직장 생활을 마치면 운전면허증 같은 자격증(박사 학위)도 하나 나오니 더 뿌듯하겠지! 겨울 방학이 끝나고 돌아오는 새 학기는 더 힘들다고 들었지만, 미래 걱정은 사서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또, 언제나 그렇듯 지금은 나는 나약하지만 2023년에 조금 더 강해질 나를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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