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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Jan 02. 2024

이선균을 추모하며 - 무지는 악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이선균이었냐고 물으면 대답은 '아니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균의 죽음은 나에게 큰 슬픔이었다.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였을 <나의 아저씨>는 나에게도 큰 위로를 줬고, 최근에는 두 번 돌려보면서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이선균의 연기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보여준 김영수였다. 차분하지만 비밀이 많아 보이는 영수 씨를 연기한 이선균이 궁금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영화관에서 봤는데, 임수정과 이혼하고 싶어 류승룡에게 자신의 아내를 꼬셔달라고 부탁하는 소심한 남편을 연기한 이선균에게서 <달콤한 나의 도시> 때와는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전설의 카사노바 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의 파워풀한 연기로 많이 기억되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내를 향한 질투와 증오, 애정, 미움 기타 등등 모든 감정을 적절하게 잘 표현한 이선균의 연기 때문에 빛을 발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 The Guardian

이선균의 죽음을 접한 며칠 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vil does not exist>를 봤다.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 도쿄에서 온 회사가 글램핑장을 지으려고 하면서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영화 제목처럼 영화에는 뚜렷한 악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글램핑장을 지어서 이익을 내는 것은 악이라기보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일반적인 활동이며, 이로 인해 환경이 오염될까 봐 걱정하고 반대하는 것은 시골 마을을 기반으로 살아온 지역 주민의 권리다. 여기서 문제는 의도적인 악이 아니라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무지다. 오수처리시설을 글램핑장에 설치하면 지역 주민들의 식수원이 오염될 것이라는 '몰랐다'라고 하는 무지, 글램핌장 부지가 야생 사슴 서식지라는 것을 '몰랐다'라고 하는 무지, 해당 지역에 산불이 자주 발생했다는 것을 '몰랐다'며, 캠프파이어를 24시간 관리감독 없이 허용하겠다는 무지. '몰랐다'는 것만큼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을까. 이처럼 무지와 악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선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우리의 무지다.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는 유명인을 세 차례나 공개적으로 포토라인에 세우고 수사하며 모발, 소변, 휴대전화 등등을 제출했다고 미주알고주알 수사 내용을 언론에 다 공개한 경찰, 이런 경찰 수사 결과를 경쟁적으로 모두 기사화한 언론들, 이선균의 마약 투약 의혹으로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투자 및 배급사가 큰 피해를 보게 됐다고 대서특필한 영화 전문기자들,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의 사적 대화를 공개한 K 언론. 의혹만으로 한 사람의 명성과 커리어, 가정을 다 무너뜨릴 수 있는 수사와 보도를 해놓고 그렇게 죽을지 '몰랐다'라고, 수사와 보도를 하는 것은 경찰과 언론의 역할이라고, 악의는 없었다고 항변한다면 나는 그 무지가 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이 죽어야만 끝나는 일이라는 것을 과거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고도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이야 바로 무지에서 비롯된 악이다.


우리는 경찰과 언론의 무지로 이선균을 잃었다. 나는 스크린 밖에서 이선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배우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동료인 영화감독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배우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이선균을 추모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공유하며 앞으로 우리의 무지가 악이 되지 않길 바란다.


이선균 배우, 추모의 글.
 
 어느 시인의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남긴 것으로 보이는 글이 있다. 그 글 어느 중간에 ‘나는 뜻이 없다. 그런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을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끊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이처럼 성실히 일해 일군 것으로 자식을 먹여 기르는 데에 소임을 다했다는 한 어머니의 경건한 소회 앞에 부박하기 그지없는 세상을 두고 황망히 홀로 떠나간 이선균 배우를 떠올려본다. 배우의 소임은 한 인간이 자신이 온몸으로 겪고 느낀 것들을 켜켜이 마음 한 곁에 쌓아두었다가 카메라 앞에 그간의 삶을 바쳐 꺼내어 놓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자기의 소임을 다했다.
 
 감독에게 배우란 서로 숙명 같은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이 애통함을 변변찮은 글로 추모하는 일이 무슨 의미이겠냐만은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그를 부서지라 껴안고 애썼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이선균 배우는 정말로 한 계단, 한 계단 단단히 자기의 소임을 다하며 힘차게 정상의 계단을 올랐다. 그가 그간 쌓아 올린 작품들 이력만 보아도 그 어디에도 하루아침에 라는 게 없었다. 그는 데뷔 초반 7년간의 오랜 무명 생활을 떨치고 굵직한 드라마로 세간에 주목을 받았지만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가리는 것 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가서 날개를 펼쳤다. 오랜 인연의 부탁에 기꺼이 우정 출연과 무보수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고 큰 명성을 기대할 작품에 상대 배역을 빛나게 해주는 것에 절대 인색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과한 연기가 드물었던 배우. 그래서 더 용감했던 배우였다. 늘 그가 출연한 작품에 상대 배우들은 이선균 배우 때문에 더 반짝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무명의 배우들을 부득부득 술자리에 데려와 감독들 앞에 자랑하기 바빴다. “감독님. 이 친구 정말 연기 잘해요. 진짜라니까요? 꼭 한 번 같이 작업해 보세요. 진짜요.” “감독님! 이 선배 진짜 진짜 연기 잘해요. 같이 작업하면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진짜> <너무너무>를 연발하며 충만한 감정 표현을 해대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이렇게나 감정이 충만했던 그였으므로 카메라 앞에 작은 몸짓과 한숨 하나로도 적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었음을 짐작한다. 우린 그런 그를 잃은 것이다.
 
 그의 범죄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피의사실이 공표 되었고, 구체적인 수사 상황과 확인되지 않은 혐의가 실시간으로 보도 되었다. 이에 감독조합은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심적 부담감과 절망감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작품들은 오롯이 그의 소임이 만든 업적들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가 받쳤던 성실한 연기는 생전에 매 순간 충실히 겪어온 그만의 삶의 응축물들이다. 언 땅을 녹이고 움트는 새싹처럼, 더운 날에 한 점 소낙비처럼, 낙엽 쌓인 길에 부는 바람처럼, 소리 없이 고요히 내리는 눈처럼, 그토록 충실한 얼굴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 삶을 던져 카메라 앞에 물질화되어 작품으로 영원히 남겨지는 배우의 숙명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비통하다. 이제 와 부끄럽지만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도 반드시 힘을 보태겠다. 고민하겠다.
 
 故 이선균 배우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2023.12.30.
 DGK(한국영화감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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