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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Jun 16. 2023

엄마가 보고 싶은 사람들

어쩌다 홍콩 

상하이 친구 Y가 홍콩에서 마지막 날 만나서 Michelle Zauner의 에세이 'Crying in H mart'를 선물로 주고 갔다. 내가 읽으면 좋아할 것 같다면서 서점에 갔다가 샀다고 선물로 건네주었다. Michelle의 책은 한국에서도 'H 마트에서 울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고, 한국 친구 몇몇이 재밌다면서 추천했었다. 그래서 이 책이 돌고 돌아 중국인 친구를 통해 내 손에 들어왔을 땐 뭔가 운명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3분의 1을 읽은 지금 시점에 나는 자신의 감정과 엄마와의 관계,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게 발가벗듯이 다 공유할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부러웠다. 성공한 인물들이 쓰는 자전적 에세이를 읽지 않는 이유는 취업 면접처럼 자기 자랑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Michelle의 에세이는 그 반대였다. 고등학교 때 음악에 발을 들이면서 엄마와 관계가 틀어지고 집을 나가고 성적이 떨어져 대학에 겨우 입학한 이야기, 마약에 찌들었던 아빠의 유년 시절, 미국 엄마처럼 친절하지 않은 한국 엄마를 받아들이진 못한 어린 Michelle, 암 투병으로 고통받는 엄마를 간호하는 Michelle. 이 에세이에는 자기 성취와 자기 자랑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을 Michelle이 어떻게 담담히 보냈는지 보여준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청소년기 Michelle이  엄마와 사이가 틀어졌던 것은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인 것 같다. 미국 백인 사회에서 성장한 Michelle은 다른 친구들 백인 엄마들처럼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하고, 전적으로 믿어주는 엄마의 모습을 동경했고, 자식이 걱정돼 다그치고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한국 엄마식 사랑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Michelle은 엄마가 만들어줬던 한국 음식을 하나하나 회상하며 방법은 달랐지만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 깨닫게 된다. Michelle에게 이 책을 쓰는 과정 자체는 엄마, 암 투병하는 엄마 주변에 있었던 가족들, 자기 자신을 더 이해하는 치유의 과정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고 돌아 내 손에 들어온 이 책. 스탠리 비치에서 읽었다. 


나도 어릴 때 엄마를 암으로 잃었다. Michelle은 에세이 첫 부분에 이렇게 말한다. 주변에 보면 자기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엄마가 아직 살아있는데, 자신은 왜 이렇게 일찍 엄마를 잃어야 했냐고.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Michelle보다 더 억울해야 하는 것은 나와 내동생이다. 그래도 Michelle은 성인이 돼서 엄마를 보냈지만, 나는 한국 나이 여섯 살에 당시 암 치료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던 한국에서 엄마를 보내야 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땐 동화책에서 산삼을 먹은 뒤 아픈 어머니가 힘을 얻고 기운을 차리는 내용을 본 뒤 내가 산에 가서 귀한 산삼을 캐왔다면 우리 엄마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동화책에서 산삼은 항상 만병통치약으로 묘사되지 않았나!


내가 어릴 때 엄마를 사랑했던 어른들은 나와 내동생을 보면 종종 눈물을 흘렸다. 작은 이모가 그랬고, 외할머니가 그랬고, 엄마 옛날 친구들이 그랬다. 몇 년 전 작은 이모는 동생 결혼식을 앞두고 우리 둘을 집에 초대해서 한상 떡 부러지게 밥을 차려주시면서 마지막에 한참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때 이모가 조카가 잘 커서 결혼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차 올라서 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모는 막내 동생이었던 우리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던 것 같다. 어린 조카 둘을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막내 동생이 이모는 오랫동안 그리웠을 것이다. 지금 우리 조카가 한국 나이로 여섯 살, 세 살인데, 나와 내 동생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나는 심장을 도려내는 것만큼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살아생전 외할머니도 우리를 보면 항상 눈물을 훔치셨다. 어릴 때는 외할머니가 우리가 불쌍해서 우시는 줄 알았다. 항상 "아이고, 이것들 두고 왜 이리 일찍 갔노" 이런 말씀을 눈물을 훔치면서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씩씩하게 잘 크고 있는데 할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슬퍼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자기보다 세상을 일찍 떠난 막내딸이 보고 싶어서 슬퍼서 우신 것 같다. "아이고, 이렇게 많이 컸노"하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던 이름이 기억 안나는 엄마의 오랜 친구들도 친구가 보고 싶어서 울었고, 이모도, 외할머니도, 막내 동생과 막내딸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이제 30대 후반으로 향해 가는 지금 어린아이를 둘 키우는 내 친한 친구들이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겠지.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엄마를 보고 싶어 하고, 내가 제일 슬픈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만큼 엄마를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좋은 아내, 친구, 막내 동생, 막내딸이었기 때문이다.


Michelle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엄마의 죽음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독점하고 싶어 했다. 나보다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엄마를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외할머니가 부모를 먼저 보낸 나만큼이나 엄마를 보고 싶어 했을 것이고, 우리 앞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물 한 번 흘린 적 없는 아빠가 어쩌면 누구보다 가장 엄마를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이고, 어릴 때 함께 자란 친동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이모도 나만큼이나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 아무도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는다는 픽사 애니메이션 COCO처럼,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를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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