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30대의 유학병>
우리 과 사람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젊은이와 늙은이. 학부를 마치고 곧장 석사로 진학한 20대 초반 친구들은 젊은이, 직장 생활을 하다가 때려치우거나 1~2년 휴직을 하고 공부하러 온 나 같은 사람은 늙은이였다. 영국에 오기 전엔 '늙은이'들이 많을 줄 알았다. 영국에서 이미 석사를 한 친구 몇몇이 "울 과엔 30대가 젤 많았어~ 석사는 경험이 중요하니까!!"라며 공부에 큰 재능이 없는데 가방끈 늘리러 떠나는 나를 위로했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공정책이라는 전공 탓인지 공무원(이집트 친구는 겸손하게 정부 공무원이라고 말하더니 알고 보니 외교관이었다)이 아주 많았고, NGO에서 일하고 있거나 관두고 온 친구들도 종종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나이도 많아봤자 20대 후반이었다. 36세인 카자흐스탄 아재가 최고령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인도 공무원 아재에게 1등 자리를 내줬다. 인도 아재는 액면가가 분명히 50세는 돼보였지만 친구들은 "확실히 40대"라며 고개를 저었다. 80명 정도 되는 과 친구들의 나이 통계를 분석해보자 나는 확실히 늙은이 범주에 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 30대가 좋다
외로운 영국 생활, 역시 믿을 것은 과 동기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번개로 삼삼오오 모여 펍에 가서 오후 4시부터 맥주를 퍼마셨고, 토요일 저녁, 일요일 저녁에도 페북에 임시 단톡방을 만들어 술친구들을 불러냈다. 20대 초반 친구들과 놀면 그들의 기를 빨아먹어서 그런가,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지만 말과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은 동년배였다. 27세~32세가 가장 말 잘 통하는 연령대였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활발한 성격의 J(우루과이)는 나와 동갑내기로 이야기할 때마다 공통점이 터져 나왔다. 1) 회사를 때려치우고 왔으며 2) 영국 외무성 장학금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생돈 내고 공부하고 있으며 3) 싫은데 좋은 척 절대 못하는 성격까지 나와 닮았다.
지금은 영국에서의 삶이 익숙하지만 오기 전까지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퇴사, 대학원 등록금, 생활비, 졸업 후 진로, 연애, 결혼 등 뭐하나 확실히 해결되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소득 제로 인생을 결심하고 이곳에 오겠다는 결정은 홧김에 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또 한 뒤에 한 결정이었다.
J도 비슷했다. J는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여자 친구와 함께 석사 유학을 왔다. (처음에 J가 '여자 친구' 이야기를 계속할 때 우리는 '상상 속의 인물'이라고 계속 놀렸다.) 그것도 같은 도시에 말이다!! J 커플은 집 살 돈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집을 살 수 있는 돈으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영국에 왔다. J의 여자 친구인 L은 이렇게 말했다.
"주변 친구들한테 좋은 소식 있다고 하니까 다들 이렇게 물어봤어. '너네 이제 결혼해??' '임신했어??' '집 샀어??' 아닌데... 영국 간다고 하니까 다들 깜짝 놀랐지."
그들도 영국에 오기 전 모든 짐을 팔았다. 단, 침대 매트리스와 진공청소기는 부모님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나는 그 진공청소기가 '다이슨' 제품인가 싶어서 며칠 뒤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ㅋㅋ) 그렇게 모든 것을 팔고 그들은 영국에 왔고, 비슷한 종류의 사람인 나를 만난 것이다.
J는 말했다.
"나는 30대가 좋아. 너무 어리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집 사고 애 낳고, 정착은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이 경험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어. 그래서 지금 온 거야."
J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우리 사회는 30대를 정착하는 나이라고 규정한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직장 생활 8~9년차 친구들의 직급은 대리 또는 과장, 팀장이 됐고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학 결정을 내리고 주변에 알렸을 때 안정지향적인 삶을 사는 친구들로부터 엄한 충고도 많이 들었다. 그 애정 어린 조언 덕분에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결정했고, 지금까지도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 반강제 미니멀 라이프
이곳에서 지난 내 생활을 많이 돌아보고 있다. 특히 소비. 나는 김생민 오빠한테 궁뎅이 500번 맞아도 싼 소비를 지난 7년간 하며 살았다. 올리브영은 내 친구, 유니클로, 자라도 내 베프, 이케아와 모던하우스, 자주에서는 불필요한 가구와 식기류, 잡동사니를 사서 집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직장 생활을 하고 월급이 조금씩 오르면서 씀씀이도 커졌다. 자라에서 그보다 조금 비싼 마시모두띠, COS로 눈이 돌아갔고, 케라시스, 엘라스틴 샴푸만 쓰다가 그보다 3배는 비싼 츠바키 샴푸 마니아가 됐다. 물가 비싼 서울에서 외식도 자주 했고, 입지도 않을 옷을 부지런히 사모았다.
올해 가장 후회되는 소비는 지난겨울 산 15만 원짜리 COS 검은 바지다. 그냥 검은 바진데, 그냥 평범한 소재인데, 이렇게 잘 맞는 바지는 없다며 신용카드 일시불로 결제했고, 그 인생 바지는 지금 브리스톨 기숙사의 한 옷장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서 강제 미니멀 라이프 훈련을 하고 있다. 일주일 용돈은 100파운드 (15만 원 정도, 식비와 교통비, 술값 모든 것이 포함되는 돈이다!!!), 영국에서 한 달 반 살면서 산 옷은 빈티지 마켓에서 산 5파운드짜리 니트 하나가 전부다. (아.. 신발 두 켤레 샀다ㅠㅠ 그래도 하나는 4파운드, 하나는 25파운드!! 생민이 오빠 봐주세요....) 불필요한 짐을 싸 짊어지고 살았던 지난 세월, 그 짐들은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산 것들이었다. 옷더미와 짐 더미를 영국에 오기 전 주변에 나눠주고 나니 모든 게 허무했다. 억 소리 나는 기숙사비를 감당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선 영국에서 6개월도 못 버틸 것 같았다. 가장 그레잇!한 소비 활동은 무소비였다. 화분 받침대가 필요해서 사려다가 햇반 용기로 대체한 일, 칫솔꽂이를 사려다가 오렌지주스 용기를 잘라서 만든 일, 화병이 갖고 싶어서 더 큰 오렌지주스 용기를 씻어서 쓴 일 등 소득이 있을 땐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을 자발적으로 하는 내가 기특해 죽을 지경이다.
나는 이곳에서 좀 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맛있는 레스토랑에 가고 싶으면 며칠 동안 집밥을 해 먹어야 하며, 주말여행을 하려면 평일엔 조용히 집과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그런 단순한 논리다. 차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고, 큰 집도 없지만 낯선 곳에서의 불안정한 삶을 통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일주일 용돈 100파운드짜리 인생이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다. J의 말대로, 불안한 삼십 대여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