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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May 19. 2017

나는 아빠를 잘 몰랐다

<철없는 30대의 유학병>

"아빠, 나 할말이 있는데.."

"와? 친구 생깄나??" (여기서 친구는 남친을 뜻한다)


지난 주말 고향집에서 아빠가 내가 끓인 쇠고기 미역국을 한 입 들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폭탄이었다. 5월 6일은 아빠의 환갑이었다. 큰잔치를 해줘도 모자란데 큰 딸은 그놈의 조기 대선 때문에 바빠서 고향에 내려가지도 못했고 쇠고기 미역국과 계란말이로 뒤늦은 효도를 했다. 그리고 폭탄을 던졌다.


"아니.. 아빠, 나 영국 대학원 간다. 회사도 그만둘거에요."

"...."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래, 어디로 가노? 이왕 가는거 공부 열심히 하고. 남자나 하나 만들어 온나. 돈은 있나? 보태주까?"


어랏.. 이게 뭐지? 내가 예상했던 반응은 이것이 아니었다. 예상 시나리오대로라면 '뭐한다고 멀쩡한 회사를 관두냐, 결혼은 언제 할꺼냐. 돈은 있냐. 갔다와서 뭐할꺼냐' 다양한 어텍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빠가 너무 쿨하게 서른 넘은 장녀의 갑작스런 유학을 장려하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 물론 아빠는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니가 안 할 것도 아니고.."라고 나지막이 읇조리셨지만..  


동생과 나는 여러 차례 예행 연습을 했다. 동생이 아빠 역할을 맡고 각종 질문을 던졌다. "잘다니는 회사 관두고 뭐한다고??? 왜 지금 가노??" 이렇게 버럭 화를 내면 나는 "아빠, 언론의 위기입니다. 특히나 신문같은 인쇄 매체는요. 그리고 지금은 브렉시트여서 파운드의 약세로 외국인들이 유학가기 적기입니다" 이렇게 논리로 무장한 답변을 준비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우리 아빠가 이렇게 쿨할 줄이야.


동생은 말했다. 아빠가 언제 우리가 하는 일 반대한 적이 있었냐고. 맞는 말이었다. 드라마 '광끼'를 보다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광고홍보학과에 가겠다며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까지 혼자 찾아갈 때도 아빠는 나를 내버려두셨고, 대학을 졸업해 백수가 돼 기자 준비를 하겠다고 통보했을 때도 언론사 시험을 치러 갈 때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교통비를 지원해주시며 묵묵히 지지해주셨다. 백수 신분으로 아빠를 초대해야 했던 대학교 졸업식 때도 섭섭한 내색 하나 하지 않으시고 자식 기를 살려준 사람이 우리 아빠였던 것을 잊고 있었다. "친구랑 같이 간다"며 거짓말하고 휴가 때마다 해외로 기어나갈 때도 혼자 가는걸 알면서 속아주셨고, "젊을 때 많이 보고 많이 놀러다니라"며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우리의 부모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쿨하고 멋지다. 나는 아빠를 '옛날 사람' '시골 사람' '보수적인 경상도 아저씨'라는 틀에 가둬 해석했다. 우리 세대 부모들이 그렇듯 안정적인 것을 좋아할테니. 결혼은 커녕 회사를 관두고 영국에 간다고 아빠한테 '통보'해야 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나보다 훨씬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의 편견에 자신의 방법으로 맞섰고, 열린 사고로 살아온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빠였다.


편모 가정(나는 이 말이 너무 싫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편견을 깨고 두 딸을 부모한테 손 안벌리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혼자서 잘 키워냈고, 이번 대선 때 내가 "아빠, 홍준표는 절대 찍으면 안돼"라고 했을 땐 불쾌해하시며 "난 심상정 찍을끼다!!"라고 역정을 내신 경상도 5060 세대 중 보기 드문 심상정 지지자였다. '경상도=한국당=홍준표'라는 내 머릿속 공식을 깬 아빠의 발언이었다. 물론 나의 회유와 협박(?)에 결국 유승민 후보를 찍기는 했지만ㅋㅋ (아빠 맞지..??)


게다가 "영국가서 공부만 하지 말고 외국인도 괜찮으니 남자나 하나 잡아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울 아빠를 보며 내가 부끄러워졌다. 저 쪽 동네 사는 아빠 친구 딸래미가 영국 갔다가 폴란드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는데 아주 잘 살더라는 성공적인 국제 결혼 사례를 들면서 비혼 낌새가 보이는 큰 딸에게 외국인 남친을 적극 권하는 것이었다. 평생 혼자 살지 말고 차라리 외국인이라도 만나라는 그런 느낌이었다ㅜㅜ


그리고 벌써 영국 오실 생각부터 하신다.


"아이고, 나는 비행기 그거 오래 못타겠더라. 영국까지 몇 시간 걸리노? "


아빠는 콧노래까지 부르셨다. 브리스톨이 어떤 곳인지 네이버로 폭풍 검색을 했다.


그러면서 던진 말.


아빠 : "거기 서울보다 한참 시골이네. 인구가 40만 밖에 안되노."

나 : "아빠, 거기 시골 아니거든! 서울이 큰거거든!"


큰 딸의 유학 통보에 이렇게 쿨하다니. 섭섭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빠의 멘트가 심장을 후벼팠다.


"살다보니 니가 끓이는 미역국도 무보네(먹어보네). 근데.. 요리는 좀 더 배아야긋다... 다시다 없드나???"


나는 우리 아빠 딸이 맞다. 저도 제 자식을 낳으면 아빠처럼 쿨한 부모가 될게요.


문제적 계란말이. 1인가구용 요리에 최적화돼 있어서 3인가구용 계란말이를 하다가 개 망했다... 아빠 미안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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