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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Jul 27. 2017

백수의 미국 여행 프롤로그

(철없는 30대의 유학병)

조기 퇴사를 앞당긴 것은 미국 여행이었다. 8년차 직장인에서 무일푼 30대 유학생으로 급격한 신분 변경을 앞둔 상황에서 출국 직전까지 빠듯하게 일해 자금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지만 6월 3주 미국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석 달치 월급을 포기한 이유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미국에 사는 절친들이(이들은 직딩이다) 없는 휴가까지 당겨서 7~8월이 아닌 6월 휴가 계획을 짜놨고 (7월 혹은 8월에 여행했다면 나는 몇 백만원을 더 벌었을 것이다) 2) 미국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구들을 방문하려면 3주가 필요한데 나의 조직은 3주짜리 여름 휴가를 승인한 전례가 없으며 3) 1월부터 8월까지 휴가 없이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일할 자신이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는 더 많았다. 전세 보증금의 75%를 지원한 회사에 사직서 승인 한 달 이내에 빌린 돈을 되돌려줘야 했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예상치 못한 출혈이 있었다. 취재원과 전화 취재할 때보다 집주인과 집 계약 문제를 논할 때 세입자인 내 목소리는 더 작아졌고, 더 비굴해졌다. 집주인과 전화 통화하던 내 모습을 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야, 너 방금 진짜 저자세였어..."

월세 5만원이라도 깎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구... 나도 집주인이 되고 싶어졌다ㅠㅠㅠㅠ 석 달치 월급(-) 두 달 월세(+) 3주 미국 여행 비용(+) 등 지출 비용을 계산하자 내 통장 잔액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든 대신 자유를 얻었다. 3주 여름 휴가가 주는 의미는 컸다. 7년 1개월간 한 직장에서 꼬박 일하면서 받았던 최장 휴가는 평일 8일이었다. 그해 좋은 상사를 만난 덕분이었고, 매일 채워야 하는 지면이 없는 기획취재팀에서 일한 덕분이었다. 누군가 나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뒤 주말을 붙여 스페인으로 11박 12일짜리 여름 휴가를 떠났고, 맛있는 음식들, 좋은 친구들, 12일의 휴식 덕분에 그해의 스트레스를 잘 다스릴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빠듯한 월급에 여름과 겨울, 부지런히 해외로 휴가를 떠났던 이유는 멘탈 유리인 나에게 휴식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3주짜리 휴가는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퇴사가 아니곤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카고 건축 워킹 투어를 야심차게 계획했던 날, 우리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10분 걷다가 취소했다. 그리고 우버를 불러 목적지를 ZARA로 찍은 뒤 도망쳤다ㅋㅋ




내 인생 첫 미국 여행 루트는 창의적이었다. 미국에 오랫동안 살았던 지인은 미국 여행 동선을 보더니 "니 일정을 파괴하고 싶다. 어떻게 미국 처음 가는 애가 뉴욕도 안가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출발 -> 샌프란시스코 환승 -> 시카고 -> 워싱턴 DC ->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 샌프란시스코 스탑오버 ->서울 도착


즉, DC와 샌프란시스코, 미국 동서를 횡단하고, 세계인의 인기 여행지인 뉴욕을 코 앞에 둔 DC에서 유턴해 미국인도 잘 모르는 채플힐이라는 도시에서 8박 9일을 머무르는 희한한 여행이었다. 채플힐이 어딘지 모르는 미국인이 있을 정도로 채플힐은 비인기 여행지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입국 심사를 할 때 시카고, 채플힐, DC를 여행한다고 하니 미국인도 "Where is Chapel Hill? Why???"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 "나도 몰라ㅠㅠㅠ 친구가 거기 사니까 가는거지!!!!" 라고 하려다가 미국 입국 심사가 아주 빡빡하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대요"라고 웃으며 넘겼다.  


이토록 창의적인 미국 여행 루트가 등장한 것은 내 여행의 목적이 친구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엔 여행 장소에 집착했다. 바르셀로나엔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보러 갔고, 파리엔 에펠탑을 보러 찾아갔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여행지의 기준은 친구로 바꼈다. 내 친구가 있는 나라가 중요 여행지였고, 관광지 앞에서 기념샷을 찍는 여행이 점점 무의미해졌다. "뉴욕은 안가냐"는 지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엔 내 친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도 잘 모르고, 유명한 것은 마이클 조던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밖에 없는 채플힐은 내 친구가 있기 때문에 8박 9일을 머무를 가치가 있는 여행지였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를 시작으로 해 샌프란시스코를 끝으로 하는 미국 여행을 기획했다. 시카고 사진 몇 장을 공개하며 차근차근 백수 여행기를 풀어가도록 하겠다.



Brewed longer than a Chicago summer. 28 days. 시카고 여름보다 오래 제조했습니다. 28일. 시카고가 겁나 춥기로 소문난 도시니까 이를 비꼰 광고



시카고 컵스 경기도 봤다. 여기는 치킨 안 파네..



시카고의 첫 식사 장소. 여기서 인생을 바꾼 햄버거 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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