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철없는 30대의 유학병>

by 수리영

에세이 3개 모두를 제출한 지난 12일, 과 동기들과 조촐한 파티를 했다. 2017년 12월은 정말 서로 얼굴 볼 겨를도 없이 도서관에 처박혀 지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에세이'는 금지어가 될 만큼 우리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펍에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시키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놀리는데,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을 떠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에 오기 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데 나는 대체 뭘 위해서 멀리 떠나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종종했다. 수년 전 내가 서울로 갈지 말지 고민을 할 때 대구의 베프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좀 우리 옆에서 자주 보면서 살면 안 되나? 니는 왜 자꾸 멀리 가려고 하는데?"


그러게. 난 왜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나 멀리와 버린 것인가. '멀리 있어서' 연애가 끝이 났을 때, 아빠가 편찮으신데 '멀리 있어서' 가지 못했을 때,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은데 '멀리 있어서' 참아야만 했을 때. 그 순간들이 너무 고독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멀리 있어서'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은 개소리였다. 그렇게 물리적 거리 때문에 쉽게 멀어질 마음이라면 가까이 있었어도 언젠가 그 마음이 멀어졌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수록 그 관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알게 됐고 내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잘 지내냐고 카톡으로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의 연락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밑반찬거리가 가득 들어있는 우체국 택배를 받았을 땐 나를 생각하며 콩자반과 깻잎 무침을 샀을 그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날 정도였다ㅠㅠ 가난한 유학생에게 "취미 생활하라"며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해준 친구, 늦은 시간에도 별 영양가 없는 내 전화를 잘 받아주는 친구, 개발새발 쓴 에세이를 꼼꼼히 읽어보고 고급진 영어로 고쳐 총알같이 보내준 미국 친구, 그들이 멀리서 묵묵히 나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삶이 쉽지 않은 순간에는 항상 내 옆에 친구가 있었다. 감정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즈음엔 맨체스터에서 친구 G가 찾아왔다. 우리는 2014년 미얀마에서 만났다. G는 미얀마에 의료봉사를 하러 온 간호사였고, 나는 취재하러 간 기자였다. 의료봉사에 초대해주신 분께서 "황쌤이랑 동갑내기 간호사가 있더라. 둘이 같이 방 쓰면 되겠다"며 엮어주신 덕분에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우정을 쌓았다. 친구가 될 인연은 따로 있나 보다. 미얀마 바간 숙소에서 엉망진창인 우쿨렐레 연주를 묵묵히 들어줬던 그 친구와 나는 어쩌다 보니 같은 해, 같은 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게 됐다. 영국 땅 덩어리가 은근히 커서 맨체스터와 브리스톨은 버스로 왕복 10시간 거리지만 G는 불평하지 않고 버스 환승(!)까지 해가며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브리스톨까지 찾아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줬다. (진짜 앞으로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ㅠㅠㅠ) 내가 3일 연속 크리스마스 파티에 끌고 다녀 지친 G는 "나 오늘은 혼자 너네 집에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할 정도로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평생 2017년 12월 영국에서 평생 우려먹을 추억을 쌓았다.


브리스톨에서도 분에 넘칠 만큼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울고 있을 때 내 방에 와서 꼭 안아주고 간 같은 기숙사 한국 친구, 도서관에 처박혀 노트북만 쳐다보고 있을 때 "점심 사줄게, 나와"라고 하더니 피자에 맥주까지 사준 친구, "절대 혼자서 방에서 울지 마. 우린 절대 그렇게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라고 위로해준 기숙사 룸메 친구, 혼자 내 방에서 자기 싫다고 하자 자기네 집으로 불러 침대를 내준 친구, 내가 젤 좋아하는 치약을 새해 선물로 준 포르투갈 친구. 브리스톨로 오지 않았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친구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하고 많은 영국의 도시 중 이곳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영어는 여전히 어렵고, 버스 기사 아저씨 안내 방송을 100%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리스닝은 늘 생각을 하지 않지만 그래도 힘들 때 품어줄 친구들이 이곳저곳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들은 내가 조금 더 멀리 가더라도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다. 이제 그만 징징거릴게. 정말 고마워ㅠㅠ








G와 함께 걸은 브리스톨 서스펜션 브릿지. 인생 이야기를 좀 했다.
이곳이 브리스톨 명당이다!!!!
두번째 크리스마스 파티. 잡채도 만들었다ㅋㅋㅋㅋ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가